하늘은 투명하다. 문화회관 옆 가로수는 가는 가을을 배웅하는 듯 빼곡하게 위를 향해 반짝인다. 고속도로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차량들은 오늘도 수없는 사연을 싣고 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이 오늘을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점이 나를 움직인 것인지 스스로 물어본다. 시공의 개념 파악은 참 어렵다. 답을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신호등이 바뀐다.

오후에는 ‘나만의 정원’이라 이름 붙인 무등산의 그 지점을 찾아 올라갔다. 정원의 품속은 아늑하다. 주위를 스케치하기도 했다. 숲속을 더 걷다가 삼거리 지점에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가을 오후 산에 걸친 해는 일찍 몸을 감춘다. 벌써 저 멀리 영암 쪽 하늘은 조금씩 붉은색 띠로 변신 되기 시작한다. 새들은 분주하고 바람도 더 일렁거린다. 육십 다섯 번 가을은 그때마다 다르게 오고 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많은 사실들은 이제 과거 속에 매몰되어간다. 시간이라는 망각 열차는 묘하다. 무엇인가 상기시키려 해도 다 지났다고 손사래 친다. 기억의 편린들은 인연이 연출한 환상인지 모른다. 특별히 너그러운 성격도 아닌데 타인과 화해 같은 것이 남은 과제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오늘을 별도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셀 수 없는 많은 날 중의 하나였고 모든 날은 동일하게 소중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상가 쪽으로 내려와 첫 식당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운동으로 인한 다리의 적당한 긴장이 느껴졌고 저녁이 되자 쌀쌀해졌지만 막걸리를 마시니 온기가 돌았다. 다시 식당에서 나와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내용을 보니 친구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이다. 그는 운동을 좋아했고 국제 경기 심판까지도 했었다. 동창생들은 단체 카톡방에서 ‘삼가 명복을 빈다’는 문자를 이어갔다.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뜰지 몰랐다. 새삼 목숨은 알 수 없는 여로라고 느껴진다. ‘이 사람아! 흔히 60대는 청춘이라고 해서 나도 그리 알고 있었네만 무엇이 그리 급했나. 올해도 두 달이 남았고 100세까지는 멀었는데….’ 혼자서 웅얼거린다. 눈부셨던 하루가 그의 떠남으로 인해 또 다른 조명이 있는 무대로 나를 끌고 간다. 하루는 그렇게 길게 이어졌다.

당초 생도 없고 죽음도 별도로 없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생활하지만 막상 가까운 인연의 흩어짐을 보면 나도 단순한 인간인지라 상실의 아픔이 깊다. 10월31일은 1년 기준으로 보면 한 해의 종착역에 가깝다. 이제 한 해가 저물고 봄이 오면 새로운 때가 시작되는데 그 출발역은 지난해 종착역의 바로 옆이다. 그러고 보면 출발과 종착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연결 고리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오고 감이 있을 뿐이다. 오고 감이라는 현상 속에 생과 죽음도 형태만 달리해 순환한다. 나도 앞서 떠난 사람들처럼 어느 지점인지 몰라도 아주 가까운 역에서 조만간 내려야 한다. 그럴 때 이별의 아픔을 넘어 더 따뜻한 담담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한 적이 많다.

문자를 본 후 얼마가 지나니 다른 동창생으로부터 내일 문상 갈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다. 우리는 떠난 친구에 대해 몇 가지 병세 악화 등 상황 얘기를 나누었다.

“내일 보자고. 남은 사람들끼리 모여보자.”

“그래, 내일 보자.”

만나면 유쾌한 사이들이지만 보내야 한다는 상실감을 서로 껴안으면서 내일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이 있는 동네에 다다르니 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가로등이 줄지어 켜져 있다. 태양은 이제 보이지 않고 밤을 향해 가는 시간이다. 어두운 밤은 그것대로 위안과 안식을 준다. 내일이 되면 태양 앞에 더욱 겸손해지고 싶다. 떠난 친구에게 다시 한번 명복을 빌어본다.

<이우영 약력>
▲‘아시아서석문학’ 수필, 시 부문 등단
▲광주시협, 광주문협 회원
▲국민연금공단 정년 퇴직
▲국민연금공단 노후준비 민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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