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경보가 발효된 2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송정매일시장 내 60여년 전통의 송정대장간에서 최종호(61) 대장공이 달아오른 화덕 앞에서 단조 작업을 하고 있다./주성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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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는 뜨거울 때 다뤄야 해 숨이 턱턱 막혀도 망치를 놓을 수 없습니다.”

25일 오전 11시께 광주 광산구 송정매일시장. 한낮이 되기 전 기온이 이미 32.2도, 체감온도는 33.1도에 달해 폭염경보가 발효된 이날 상가 대부분은 문을 굳게 닫고 냉방기기를 가동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비교적 고요했는데, 앞·뒤로 셔터문이 활짝 올라간 한 상가가 가까워질수록 적막은 깨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60년 전통의 광주 송정대장간이다.

대장간 한 켠의 화덕에선 불볕더위보다 더한 화기(火氣)가 뿜어져 나와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화덕이 1천600도 이상으로 달궈지자 대장간 내부는 숨쉬는 게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곳의 주인 최종호(61) 대장공의 손놀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집게에 물려 모루 위에 올린 최 대장공이 망치질을 시작하자 작은 불꽃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그의 손이 올라갔다 내려올 때마다 이마와 목덜미,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고 대장간 안을 넘어 바깥까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정하게 들려오던 쇳소리는 최 대장공이 선풍기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렸을 때야 멈췄으나 이마저도 길진 않았다. 한 번 두드리기 시작한 쇠는 낫이나 호미 등 모양이 잡힐 때까지 ‘메질’을 이어가야 질좋은 도구로 거듭나서다.

최 대장공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에게 대장일을 처음 배웠고 26살부터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 현재까지 30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화덕 앞을 지키는 중이다.

그는 “아버지를 도우며 시작했지만 서울에서 용접과 기계 제작을 배우며 경험을 넓혔다”며 “결국 이 길로 돌아와 쇠를 두드려 물건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인정해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장간에 사람이 많았던 과거에는 메질을 손으로 다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최 대장공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기계 ‘스프링 해머’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구를 완성하는 마무리 작업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때문에 새벽부터 일해도 혼자선 하루에 호미 몇 자루밖에 만들지 못하는 게 그의 현실이다.

대신 최 대장공이 만든 농기구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보다 내구성이 훨씬 튼튼해 한 번 구매한 다른 지역 사람조차 계속 찾는다고 한다.

그는 “시중 농기구 대부분이 중국산인데,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을 써본 사람들은 다시는 다른 걸 못 쓴다고 한다”며 웃었다. 웃는 얼굴에서 대장일에 대한 자부심이 반짝였다.

최 대장공은 학생들이 찾아오면 작업 과정을 보여주며 전통 기술을 알리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목표지만, 아직은 꿈에 머물고 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후계자 부재도 고민이다. 최 대장공은 “전국에서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있지만 며칠 만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불 앞에서 버티려면 깡다구(?)가 중요하다”며 “광주·전남에서 사람의 손으로 운영되는 대장간은 이제 몇 곳 되지 않는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무형문화재 등록이 목표”라며 “쇠를 달구고 두드려 붙이는 고유 기술인 ‘단조 방식’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꿋꿋이 자리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주성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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