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4(화)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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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아파트를 나서다가 길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커다란 쥐 한 마리를 보았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쥐떼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나라 도시도 그러하다는 뉴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쥐가 잡히면 방역업체에 연락이 가는 ‘스마트 쥐덫’을 지하철 역사에 설치하고 있단다. 그들은 어쩌다 쥐로 태어나 그러한 수난을 당하게 되었을까 싶다.
쥐는 필자에게 그리 징그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월트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를 통해 세계적인 인물이 됐다. 젊은 시절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아티스트로 일할 때, 작업실에서 커피 캔으로 잡은 쥐를 키우면서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운영하던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구상했는데 고양이, 개, 토끼와 다른 독특한 귀를 가지고 있고, 단순한 형태로 표현이 가능한 쥐가 최종 선택됐다. 이때 만들어진 쥐 캐릭터가 바로 미키 마우스이다. 미키를 통해 쥐를 귀여운 동물로 재탄생시켰다.
내 아버지는 우리가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문쥐떼 같다”고 하셨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느 가을날 들판에서 나락을 베다가 문쥐떼를 직접 보았다. 커다란 어미 쥐가 갑자기 튀어 나가는데, 그 어미 젖에는 새끼들이 열매처럼 줄렁줄렁 매달려 있었다. 나락 논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다가 사람들이 점점 다가오니, 급한 상황에서 한꺼번에 새끼들을 옮기는 방법으로 모두 어미 젖에 매달리게 했던 것 같다.
소백산에 여우를 방사하고 있다고 한다. 여우 개체수가 늘면 도심과 지하철에도 방사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미국 옐로우스톤에서 만난 여우가 생각난다. 밤이면 숙소 옆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손에서 받아먹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시절, 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는데 오가는 길에 종종 고라니를 비롯한 여러 산짐승을 만나곤 했다. 한동안 사라졌던 산짐승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도심에서 만나는 여우는 어린왕자의 별에 사는 여우처럼 정겨울 것 같다.
가리는 음식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늘 “사람들이 먹는 것은 거의 다 먹습니다. 사람들이 못 먹는 것도 먹습니다”라고 답을 한다. 가을걷이 후 타작한 나락을 쌓아놓은 곳간에는 아무리 구멍을 막아도 쥐가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쥐덫을 곳간에 설치해 놓으셨다. 서늘한 늦가을 초저녁,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특별한 이벤트를 하셨다. 마당에 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준비해 쥐고기 숯불구이를 해주셨다. 사냥해온 들쥐의 살을 발라 새끼들의 입에 넣어주는 매처럼, 할아버지는 마당의 화롯가에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숯불구이를 한 점씩 넣어주셨다. 곳간에서 쌀만 먹고 자라 통실통실하게 살이 오른 커다란 쥐는 숯불에 구우면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받아먹지 않으려는 아이에게는 “쥐는 머리가 좋은 아주 영특한 동물이란다. 이걸 먹으면 너희 머리도 좋아 질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단백질 섭취가 어려웠던 그 시절, 여름에는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삼계탕을 만들어 주셨다. 삼이 너무 써서 먹는 척하다가 죽석(대나무로 만든 장판) 밑에 사알짝 밀어 넣었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는 통통한 쥐를 가지고 특별한 단백질 섭취 기회를 만들어 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 덕인지 우리 형제들 모두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쥐는 12간지의 첫 번째 동물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들었던 꾀 많은 생쥐 이야기는 기억이 생생하다. 옛사람들은 쥐를 재치와 생존력의 상징으로 보았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는 곡식 창고에 사는 쥐를 부와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갈 곳 잃은 쥐는 그저 박멸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의 신세가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회갑을 넘긴 쥐띠여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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