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4(화)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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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 사이를/ 외로이 걷게 하소서// 그러나/ 내게 주신/ 가장 뜨거운 것들을/ 저들 먼 별빛 속에/ 차가운 바람 속에/ 다 사라지게 하소서.’
「가을의 기도」는 다형이 조선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던 1956년 4월 ≪문학예술≫에 발표된 시이다. 한국 전쟁 직후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시인이 선택한 방식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기도’였다. 그러나 그 기도는 종교적 교리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묵상과 고백이었다. 그래서 이 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생생하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첫 구절은 계절의 이름을 빌려, 우리의 삶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다형의 가을은 단풍의 계절도, 추억의 배경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이 드러나는 시간이자, ‘비움’이라는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모든 게 떨어져 나간 자리에 고요히 드러나는 나무처럼, 인간도 껍질을 벗고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현대는 과잉의 시대다. 넘치는 말, 정보, 욕망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놓친다. 우리는 SNS 속 이미지, 타인의 시선, 과시적 자아의 그림자를 붙잡느라 본래의 자아와 멀어진다. 「가을의 기도」는 그런 시대를 향해 ‘멈춤’과 ‘비움’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그 모든 그림자마저도 내려놓으라고. 그것은 포기의 권유가 아니라, 자기 회복의 요청이다.
이 시는 ‘기도’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종교적 교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간절한 소망의 언어다. 다형에게 기도는 무릎 꿇는 행위가 아니라,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통로였다. 그래서 오늘날 ‘마음챙김’이나 ‘명상’으로 불리는 현대적 실천과도 공명한다.
따라서 「가을의 기도」는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한 존재의 선언이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은 여전히 고독하며, 그 고독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형은 언어를 절제하고, 감정을 정제해 고요한 시공간을 창조했다. 그 속에서 독자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그것이 이 시의 가장 큰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자기 계발과 성장의 언어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 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더 가지려 하지 말고, 더 보여주려 하지 말고, 더 말하려 하지 말라고. 오히려 떨어지고, 감추고, 침묵하라고. 그것은 소극적인 회피가 아니라, 존재를 더 온전히 껴안기 위한 실천이다. 그런 점에서 「가을의 기도」는 자기 치유의 언어이며, 현대인의 내면을 위한 깊은 숨이다.
다형 김현승의 시를 오늘에 다시 읽는 일은, 그를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그 시의 언어는 결코 낡은 게 아니다. 오히려 과잉된 이 시대를 향해 가장 단단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떨어진 잎들 너머의 진실을 볼 준비가 되었는가?” 이 고요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비로소 ‘가을의 기도’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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