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목)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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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계절에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물음의 끝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섬세한 철학이자, 감성으로 사유하는 인문학이다.
한 권의 시집은 두꺼운 철학서를 대신한다. 시의 언어는 논리를 넘어, 감정과 존재의 근원에 닿는다.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며, 스스로 내면을 비추는 일이다. 철학이 ‘앎의 깊이’를 탐구한다면, 시는 ‘느낌의 진실’을 탐색한다. 플라톤이 진리를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았다면, 시인은 그것을 감정의 떨림 속에서 발견한다. 이처럼 시는 철학이 다다르지 못하는 곳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시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배우고, 자신의 상처를 이해한다. 윤동주의 시는 부끄럼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의식을 일깨우고, 김소월의 시는 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다. 나태주의 시는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윤리를 가르친다. 시의 언어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구체적인 일상의 감정에서 출발해 인간의 보편적 진실에 도달한다. 결국 시는 ‘감정의 철학’이자, ‘존재의 미학’이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아니라, 읽어야만 하는 계절이다. 자연이 말을 멈추면, 인간은 언어로 그 침묵을 대신해야 한다.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는 시의 리듬이 숨어 있다. 바람의 고요함, 햇살의 결, 저무는 노을의 색감이 모두 하나의 시적 문장으로 완성된다. 시를 읽는 일은 자연과 인간, 이성과 감성, 시간과 존재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는 행위다.
인문학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그러나 그 이해는 언제나 정의나 논리로 완성되지 않는다. 철학이 인간을 ‘설명’하려 한다면, 시는 인간을 ‘느끼게’ 한다. 시를 읽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를 깨닫는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읽는 일이다. 시의 한 행은 거울처럼 내면을 비추고, 잊고 지낸 감정의 결을 되살린다. 우리는 시 속에서 타인의 언어로 나를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다시 세계를 이해한다. 시의 여백은 철학의 질문처럼 우리에게 사유의 시간을 주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문을 연다.
가을 햇살이 창가에 머물 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집을 펼쳐보자. 그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사유의 시간이며 존재의 여행이다. 시의 언어는 우리를 조용히 붙들고, 일상의 속도에 지친 마음을 다독인다. 그 한 줄의 시가 마음속 어딘가를 울릴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느낀다.
시로 읽는 인간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철학이며, 감성을 통해 이성을 확장하는 인문학의 언어다. 시를 읽는 사람은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깊이를 얻게 된다. 그것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 계절, 당신에게 시집을 권한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열어주는 열쇠다. 시 속에는 철학이 있고, 그 철학 속에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 안에는, 다시 시가 있다. 결국 시와 인간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시 읽는 당신이 정녕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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