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5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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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야기
주홍
치유예술가
샌드애니메이션 아티스트

  • 입력날짜 : 2020. 07.14. 17:53
나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고,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딸이 있다. 요즘은 한 아이도 키우기 어려운 시절이다. “엄마! 어떻게 육남매를 키우셨어요?”, “너희들이 스스로 컸지, 내가 뭣을 했다냐?” 육남매를 키우신 엄마는 항상 “우리가 스스로 컸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잘 커줘서 참 고맙다”란 말로 마무리하신다. 어려운 시절, 남광주 새벽시장에 나가서 장을 보시고, 식당 주방에서 손에 물이 마를 겨를 없이 육남매를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엄마는 지금도 자식을 당신이 키운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너희들이 나에게 찾아왔고 스스로 컸다’라는 엄마의 태도와 말씀은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을 심어주었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 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엄마는 현명한 삶의 답을 알고 계셨고, 옛날이야기로 우리들에게 스며들도록 이야기 해주셨다.

“옛날에 어떤 나그네가 마을을 지나가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초가집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대. 그래서 피죽도 못 먹고 사는 집 같은데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아이의 재롱을 보며 가족이 모여 웃고 있었단다. 나그네가 그 마을 한 가운데 부잣집을 지나는데 큰 싸움 소리가 들려, 무슨 소란인가 하고 보니, 형제들이 금과 돈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며 욕을 하는 소리였단다. 나그네는 지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해 주셨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 싸움소리가 들리는 집’이다.

“정말 부지런한 나무꾼이 살았단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하루에 나무 다섯 단씩을 더 해서 마당에 쌓기 시작했지. 그런데 아침이면 마당에 있던 나무 다섯 단이 감쪽같이 없어져 버리는 거야. 나무꾼은 도둑을 잡으려고 잠을 자지 않고 나무 다섯 단을 지키고 있었단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에서 줄이 내려와 나무꾼이 열심히 일해서 쌓아둔 나무들이 밧줄에 묶여 하늘로 올라가버리는 거야. 나무꾼은 그 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서 옥황상제께 억울함을 호소했대. 옥황상제는 “큰 욕심을 부리면 화를 당할까봐 거둬갔으니, 하루에 한 단씩만 해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라고 했다는 거야.”

‘나무꾼 이야기’는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너무 욕심 부려서 재물을 쌓아놓으면 불화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난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무꾼이 열심히 노력했는데 옥황상제가 나무를 가져가버리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할머니와 나무꾼할아버지가 등장하는 ‘내 똥이야!’ 이야기는 너무 웃기고 재밌는 엄마의 옛날이야기였다. 나는 그 많은 이야기들을 엄마가 지어서 해주신 것인지, 엄마의 엄마에게 들어서 해주신 것인지 모른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마라’와 ‘형제간에 돈으로 싸우지 마라’는 말을 여러 가지 이야기로 해주셔서 육남매는 소박한 삶의 태도와 우애와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장했다.

엄마의 음식 중에 기억에 남는 요리가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중이셨을 때, 너무 가난해서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닭고기는 살 수 없고 단골집에 가서 모래주머니와 닭 창자를 얻어오셨다. 가느다란 닭 내장을 갈라서 똥을 빼고 굵은 소금으로 비벼서 여러 번 헹궈낸 뒤, 마늘과 고추장 양념에 볶아서 맛을 보라며 입에 넣어 주셨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배고픈 자식들에게 어떻게든 고기반찬을 먹이려는 엄마의 지극한 정성이 담긴 최고의 음식이었다.

여름이면 모시로 직접 옷을 지어 입혀주셨고, 풀 먹인 빳빳한 옷은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삼베로 만든 여름 이불은 땀은 잘 흡수하고 달라붙지 않아서 잠자리에서 모기를 막아주는 시원한 이불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엄마의 손길로 만들어주신 모시옷이 생각난다. 이렇게 엄마의 옛날이야기와 손길로 우리는 자랐다. 가난했지만 그 정성이 삶에 스며들어 인간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성장했다.

그리고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다. 가장 유치한 ‘내 똥이야!’ 이야기를 우리아이들은 제일 좋아한다. 근본적으로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엄마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음을 이제 알았다.

몇 달 전, 여성작가 몇 명이 모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엄마이야기’를 주제로 전시한 번 할까요?” 하고 열 세 명의 여성작가들이 모이게 됐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나 엄마가 딸에게 하고 싶은 말 등, 다양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엄마의 기억을 표현하기로 했다.

우리를 키운 엄마의 손길은 인류공동체를 품어주는 신성한 손길이다. 우리시대의 나무꾼이 한 단씩만 해서 아마존의 숲을 훼손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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