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목련나무 파릇한 움틈을 보면 한 계절을 걸어와 연록색 부챗살 펼친 사이로 상큼상큼 다가오는 해맑은 여린 봄이 보인다 운주가 산정의 슬픈 와불이 되어 구름 속 달처럼 우는 누이야 매서운 바람 견디어 온 인동초 기지개 펴는 소리 가슴앓이 터뜨리는 소리 들으렴 목련향 은은히 베적삼에 스미면 …2018-01-08 18:38

뭉게구름 위에 이 몸 실어 하염없이 흘러가노니 푸른 하늘이 열리고 축령산 초록향기 피어오르네. 연두빛 잎들이 성숙되어 하나씩 내려놓는 여유 더 이상 내게 부러울 것 하나 없구나. 이대로 구름 되어 흐르다 산 중턱 호수에 내려 앉아 잔잔한 물처럼 묵묵히 가슴으로 바라보노라니 하늘도 산도 내…2018-01-08 18:38

지난 해 끝자락에 받은 건강검진이었다. 결과 통보서를 훑던 내 눈에 들어온 노란 형광펜 몇 줄, 돌연한 암 의심 통보에 가슴을 졸였다. 재검진 받기까지 그 일주일의 초조함이 내 생의 방향을 궤도 수정하게 했던가. ‘매사에 떳떳한 사람,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람’ 이는 새 수첩 첫 장에 적어놓은 2017년 새해의 목표…2018-01-08 18:38

연휴 사흘 꼼짝 않고 집에서 뒹굴었더니 허리가 무질근하다. 요가 선생님 역시 쉬는 동안 허리통증이 왔다고 한다. 디스크에는 혈관이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산소 공급이 안 되어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리를 움직여서 디스크 주위의 근육을 늘리면 산소가 그 틈바구니를 뚫고 추간(椎間) 연골 속으로 공급되어 혈액…2017-12-18 18:56

뒷등 자욱한 봄 안개 속에 대들보가 무너지자 설움도 한갓 호강이라는 듯 줄남생이 같은 자식들 앞세우고 안산 밑 자갈 배미 다랑논 묏등골 큰 밭 호락질로 휘어잡더니 청룡도 든 두억시니 같은 눌어붙은 日月의 더께 떨쳐낼 수 없던가요? 흙과 함께 굽은 등 삭은 나무토막처럼 드러누워 저승사자만 …2017-12-18 18:56

그대 사는 마을에 눈이 내립니다. 목에 잠긴 그리움을 한꺼번에 몰아가는 바람 사이로 언뜻언뜻 그대가 보일 듯합니다. 겨울까지 견디어 준 한 해의 기다림이 저물고, 다른 이들과 풀지 못했던 사연들을 기억해 내느라 그만 잠을 놓쳤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먼저 풀어버린 하늘이 축복처럼 그대 사는 마을…2017-12-18 18:56

창작(創作)이 어려워라 시상(詩想)은 잠이 들고. 살수록 어렵구나. 인생(人生)은 병이 들어 부럽다 일월성진(日月星辰)은 변함없이 빛나네. 세월을 원망마라 인간이 과욕(過慾)하지. 산과 들 물을 봐라 새롭고 아름답네. 욕망(慾望)이 너무 많아서 병이 들고 지친다. 차라리 돌이 되어 한자리 지키면서 아무런…2017-12-18 18:56

우리 동네 작은 사거리 한 모퉁이에는 구두 수선을 하는 구둣방이 있습니다. 너무 낮고 좁아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큰 상자 같은 곳이죠. 이사 오면서부터 있었으니 십 년은 족히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나 봅니다. 수선하면서까지 신을 만큼 좋은 구두도 없고 구두 닦을 일도 없으니 그곳은 나에겐 그저 길 한…2017-12-04 19:16

밀실 가득 슬픔의 천궁이 알알이 눈부시다 극락, 뽐내는 저 조그마한 시샘들 황홀함이 이런걸까 다홍 주머니 입이 시려 어느 여인의 보석상자 허나 유혹, 향해 기어이 몸, 열었구나 가을 시골집 뒷마당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석류는 마치 새색시 얼굴마냥 홍조를 띠고 있다. 그리고 살포시 열려 있는…2017-12-04 19:16

자벌레는 측량하지 않는다 부동산투기를 하지 않는다 묵묵히 길을 간다 오체투지를 하다가 남들 안 보는 나무 그늘에서도 허투르게 그냥 걸어가지 않는다 부처를 향해가지 않으며 천국을 꿈꾸지 않는다 연약한 몸엔 사리 같은 건 없다 헐벗은 지구의 옷 초록색 실로 한 땀 한 땀…2017-12-04 19:16

꽃 하나 이운 자리 마침표를 찍고 싶다 수런대는 아침 숲속 희뿌연 안개 너머 실팍한 우듬지 위로 땡볕 고루 여민다 더위도 꼬리 내린 하늘 성큼 높아지고 움킨 햇살 물이 들어 열기로 가득하다 버리고 비울 줄 아는 나무들이 뜨겁다 가지마다 휘청하게 받아 든 노을의 집 새들이 날아들어 이슥토록 노닥이고 …2017-12-04 19:16

바람에도 결이 느껴진다. 겨울을 잊지 말라는 바람과 봄을 알리려는 바람이 뒤섞여 얼굴을 스친다. 입으로는 춥다면서 어디든지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센바람을 피하려고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이웃 아파트 단지를 지나간다. 양지쪽에 배부른 항아리 모양으로 서 있는 동백나무에는 잎과 꽃이 반…2017-11-20 19:13

긴 생의 마중물 억겁의 시간을 토닥여가는 조각난 숨결 왜, 이리 단단한 동아줄이 되었을까 찰나의 흔들림마저 마디마디 멍울이 된 항구 누구의 장난일까 힘이 들면 바람의 길이 되라던 구름의 길이 되라던 실연들은 핏물이 되어 건널 수 없는 먼 길의 강물이 수많은 약속을 달래가며 길을 묻는 저 금…2017-11-20 19:13

살을 물고 있던 실밥을 풀었다 유통기간 2017. 5. 9. 음료수 뚜껑의 조인 시간을 풀었다 팔 년 전에 묻어 놓았던 타임캡슐의 기억을 풀었다 오래 전에 받았던 핑크빛 편지봉투의 봉인을 풀었다 아픔이 상처를 여물게 하는가 성숙한 영혼의 고치에서 뽑아 올린 붉은 실 한 올 인간의 삶은 풀기를…2017-11-20 19:13

당신이 펼친 푸른 양산 하늘을 우러러 초록바다 이루나니 해님은 얼굴 감추고 솔바람만 반기오. 당신 없는 잡초 우거진 곳이라면 초동목수가 아니고서야 그 누가 좋다고 이곳을 찾아와 즐기리오. 당신의 푸른 품속을 거니노라면 몸도 마음속도 푸르게 물들어 세월이 주고 간 인생 계급장도 다 지워진다오. …2017-11-20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