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일)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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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류씨 10대 종가 운조루(雲鳥樓) 셋째 며느리,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 이장, 행복한옥마을 추진위원장, 문화유산해설사…’
이 모든 직함의 주인공 곽영숙(42)씨와의 만남은 한없이 즐거웠다. 일단,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고상한 종갓집 며느리 모습을 생각했는데 한방 먹었다. 야무지고 당차다 못해 사진은 영화배우 ‘고현정’으로 써달라고 할 정도로 유머러스했다.
그녀가 사는 곳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 광주에서 1시간 30분여,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 섬진강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오면 범상치 않은 한옥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그 유명한 운조루다. 도연명의 ‘구름(雲)은 무심히 피어오르고 새(鳥)들도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라는 귀거래사 시구에서 앞의 두 자를 따온 택호다. 그래서인지 운조루는 지리산 산자락 아래 구름 속 한 마리 새처럼 앉아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쌀뒤주. 여기엔 누구나 맘대로 퍼갈 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적혀있다. 1776년 지어졌으니 240년 전부터 나눔과 베풂을 실천했던 역사 깊은 곳이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마을은 불과 3년 전 만해도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35가구, 인구 70명의 중 대부분은 65세 이상 노인으로 고령화 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 하나 둘 떠나면서 마을은 생기를 잃고 활력을 잃어갔다. 운조루도 마을이 쇠락하는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었다.
그랬던 마을이 불과 3년만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 논밭이 전부였던 마을엔 멋스러운 한옥 25채가 들어섰다. 숙박시설은 물론 체험장 등 관광객 편의시설이 설치됐다. 주말이면 빈 방이 없을 정도로 인기다. 고령에 농사 짓기도 힘들어했던 마을 사람들은 민박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자 신바람을 냈다. 운조루에도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답사객들로 문턱이 닳을 정도다. 그렇게 오미마을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생기 넘치는 곳이 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건 운조루 셋째 며느리 곽씨의 노력이 컸다. 경상도 진주가 고향인 그녀는 1996년 3월 남편 류영수씨와 결혼했다. 만난지 70일만이었다. 그리고 2004년, 운조루에 들어왔다. 노모를 홀로 둘 수 없다며 집 지키러 간다는 남편을 따라서였다.
“처음엔 운조루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인지도 몰랐죠. 큰 집을 관리하고 어른들을 모시고 살아야 해서 처음엔 적응하기 낯설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힘들었던 것도 잠시, 그녀는 금세 마을을 사랑하게 됐다. 둥그렇게 싸고 있는 지리산과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운조루. 역사 깊고 아름다운 마을의 의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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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에는 ‘타인능해’라는 쌀 뒤주가 있어요. 밖에서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집주인이 누구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마련한 거죠. 우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은 가만히 있는 산이지만 역사적으로 많이 어둡고 힘들고 많이 암울했던 산이잖아요. 그런 산 밑에 이렇게 큰 집이 240년을 이어올 수 없다고 해요. 타인능해 처럼 많이 베풀고 살아서 지금까지 운조루가 유지되는 거죠. 베품과 나눔의 정신, 타인능해가 바로 보물이고 생명력 인거죠.”
곽씨는 문화유산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운조루를 다른 사람이 안내하는 것보다 직접 알려주면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 구례 곳곳의 볼거리를 안내해주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외지 관광객들에게서 구례 문화재를 가장 쉽게 설명할 줄 안다는 칭찬도 받고 있다.
하지만 운조루에 대한 자부심도 쇠락하는 농촌의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마을 존립자체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고 대부분 70-80대인 마을사람들은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한옥단지. 운조루가 있다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한옥에 대한 거부감도 적었다. ‘그래, 한옥단지를 조성해 관광사업을 해보자.’ 그렇게 의기투합한 마을 사람들은 팔을 걷어 부쳤다. 그리고 전남도 행복마을 사업에 신청했다. 한옥을 단지·규모화 했을 때 지원금을 줘서 마을주민들의 생활여건도 개선하고 일부 도시민 민박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사업이었다.
막상 사업 신청은 했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한옥단지가 들어설 곳이 전부 사유지다 보니 인허가 문제였다. 장성해서 나간 자식들의 경우 땅을 팔기를 꺼려했다. 곽씨와 마을 주민들은 설득에 들어갔다. 우리 마을이 발전해야 100년, 200년 가도 없어지지 않는다며 설득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오미마을은 행복한옥 마을단지로 선정됐다. 마을 사람들은 도비 2천만원과 군비 1천만원을 지원받아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 3년 만에 25동이 들어섰다. 그리고 방문객을 위한 체험관도 지었다. 그렇게 오미마을은 단기간에 상전벽해처럼 변했다.
“이제 우리 마을은 선진지가 됐어요. 후손들과 타도시민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거죠. 우리 한옥마을이 처음에 생겼던 취지와 걸맞게 유지되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어우러졌으면 해요. 그래서 녹색농촌마을, 체험마을 등 연계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신청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계속 유지 발전하면서 좋은 평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그녀는 지난해 마을 이장까지 맡았다. 처음엔 어르신들이 어려워 방송도 못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를 엄청 예뻐해 주신다며 배시시 웃는다.
그 때문인지 인터뷰 도중에도 그녀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트랙터가 상수도관를 건드려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민원’ 이었다. “내가 못살아. 물 안나오는걸 내가 어떻게 하라구…”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곽씨에게 이렇게 바쁠 걸 모르고 이장했냐고 물었더니, 정말 몰랐단다.
마을일 때문에 하루 종일 눈코 뜰새 없지만 그녀의 가장 큰 소원은 그저, 마을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한옥단지로 하나도 뭉치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생기 넘기는 마을이 된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매일 마을을 돌며 그 속에서 나눔과 베풂의 ‘타인능해’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글=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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