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나들목에 달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완도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였다. 그곳을 지나다 쓰러져 가는 선창의 창고에서 문서를 하나 찾았다. 장례식의 부조금 내력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의 품목은 ‘조기’였다. 다섯 마리가 보통이고 간혹 더 많은 조기를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길을 가다 오래된 창고나 빈집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해보니 30여 년 전 동학들과 지역연구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가난과 연애는 숨길 수 없다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의 버릇도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도 출장을 가면 간혹 촌로의 앨범과 일기를 구경한다. 한 번은 염전사택에 들어갔다 염전 초기 운영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을 발견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건물 책상 서랍에 뒹굴고 있었다. 이미 표지는 달아났고, 내용도 색깔이 바랬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자료를 가져올 수 없었다. 주인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또 가져온다고 한들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소하지만 하찮은 것들,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근현대의 기록이 일제강점기 기록보다 찾기 어렵다고 하겠는가.

최근 서울학, 부산학, 인천학, 제주학 등 지역연구가 활발하다. 우리지역에서도 지역 ‘호남학’ 거점연구기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모델이 ‘한국국학진흥원’이다. 경북 안동에 위치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교문화를 전시·영상화하고 퇴계사상과 국학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문화의 심층연구 및 교육 등을 통한 한국학을 진흥’하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설립됐다. 유신정권 때 만들어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재출발한 것이다. 두 기관의 ‘유교문화’와 ‘한국문화’ 연구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국학연구원이 유교문화와 함께 내세운 분야가 퇴계사상 연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유교와 퇴계, 보편성과 지역성을 담으려는 흔적이다. 보편성으로는 중앙의 연구기관과 경쟁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역 거점의 연구기관을 만들 때 새겨야 할 부분이다.

우리지역의 대학에는 오랫동안 지역연구를 해온 곳이 있다. 최근 민간영역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관심이 많다. 이들 간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다.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인문학은 물론 자연과학과 통섭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학문의 미래가치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실용을 담보하지 못한 명분은 쉽게 무너진다. 인문학 기반의 성장동력은 뿌리가 깊고 글로벌하다. 인문학의 부재 속에 인문학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실사구시의 지역연구가 미래의 성장동력이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