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지방문단 발전에 헌신해 온 최일환 시인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1985. 8. 11)

해목(海木) 최일환(崔日煥, 1936-2005)은 목포문단의 산증인이요, 불변의 터줏대감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36년 6월 12일 해남군 산이면 원항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목포로 건너와 2005년 여름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목포에서 살면서 그 나름의 문학적 아성을 쌓은 시인이다.

최일환은 1963년 ‘아동문학’지에 동시‘선생님이 나를’이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1972년 장르를 시로 바꿔 ‘시문학’과 ‘월간문학’에 잇따라 작품을 발표, ‘부뭇골 뜸북새’를 비롯해 ‘두만강에서 손을 씻고’, ‘그립다 고향친구’등 시집 10권을 우리의 손에 들려줬다.

반도의 남쪽 끝 해남, 출렁이는 푸른 파도의 포말을 바라보며 장래의 원대한 꿈을 키웠던 최일환은 지상에서 70년을 동심처럼 살다갔다.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야 출세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는 짜디짠 목포 선창에 주저앉아 가슴시린 시심(詩心)을 퍼 올렸던 것이다. 해풍을 닮아 가슴이 끈적끈적한 사람, 그런 까닭에 유난히도 정이 많았던 시인 최일환.

너무 가난한 마을이었기에 ‘풋나락’으로 명명되었던 그의 고향 해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시인은 물 건너 목포 유학을 나오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게 된다.

어찌 보면 시골스러운, 아니 이웃가게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인상을 주는 그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인임에 분명했다.

최일환이 전남문단 발전에 바친 열정은 그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맥이 끊겼던 ‘목포문학’지를 1984년 복간한 것을 시작으로 청호동인·목포시문학회·전남시인협회 창립, 전남시문학상 제정 등은 그가 전남문단에 남긴 괄목할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해남군 산이면 금호방조제의 해남광장에 세워진 시비 ‘남쪽 섬들’

뿐 만 아니다. 제11회 세종아동문학상을 비롯해 제23회 강소천 문학상, 제6회 자유시문학상, 제32회 전남도문화상, 제5회 남농예술상 등의 수상에서 보여지 듯 그는 시인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음이 확인된다. 특히 그의 마지막 시집이 된 제10시집 ‘떠나가기’(한림 刊)는 먼저 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행간마다 절절히 녹아 있어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40여 년간 살 부비며 살았던 아내를 떠나보낸 시인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그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풀고 이제는 아내 곁에 누웠으니, 그에겐 더 없는 행복이겠다. 최일환은 가고 없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그의 노래가 새겨진 동시집 10권과 시집 10권, 수필집 1권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최일환은 자신의 문학적 성과와 출세를 위해 중앙문단 언저리를 기웃거렸을 법 하련만, 1963년 등단하여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찢어진 남녘 포구를 지키며 향토문단의 텃밭을 일궜다.

그가 한국문단의 중심부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초등학교 시절부터 쓰기 시작했던 일기의 힘이었다. 꼼꼼하게 써내려간 생활의 기록들, 이것은 훗날 문학예술로 승화되어 ‘사람 냄새’물씬 묻어나는 작품들을 샘물처럼 뿜어냈던 것이다.

최일환의 시세계는 대략 일상성과 향토성으로 압축할 수 있다.

남농 허건 화백과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시인(왼쪽 두 번째 남농 화백, 네 번째가 시인, 1983)

생활 주변이나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의 모든 것들을 시적 소재로 삼은 것이다. 게다가 그의 시는 순수성과 건강성도 지니고 있다. 등단 초기에는 피폐해져 가는 농촌 사회에 대한 회복을 주창했고, 후기에 들어서는 무공해 인간상의 향수를 통해 상실한 인간성 되찾기에 시선을 박았다.

한때는 한국 최초 여류소설가 박화성을 만나 소설을 공부하기도 했던 그는 목포고 시절 전국 학생 문사들의 각축장이었던 ‘학원’지를 화려하게 수놓기도 했다.

당시 ‘학원’지를 통해 낯익었던 이름들은 이제 하나 둘씩 우리 곁에서 종적을 감추고 있다. 최일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일환이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어느 문학 행사에서 그가 신들린 듯 낭독하였던 ‘목포의 눈물’이란 시가 생각난다.



“목포사람들은 선창가에 나가/ 비린내 나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막으면서/ 생낙지가 도마 위에서/ 칼에 맞아도 꿈틀거림을 보면서/ 헐벗긴 삼학도 쪽으로/ 두 주먹 불끈불끈 쥐면서/ 소금기 짜디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이난영의 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노래하면서….”

최일환이 떠난 남도 포구엔 갈매기만 속절없이 울어대고, 낭랑한 시인의 목소리는 갯바람에 산산이 흩어졌다. 오늘처럼 낙엽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사람이 이토록 그리운 걸 보니, 가을이 깊어 가는가 보다.

설 명절이나 추석 때면 반드시 검정한복을 챙겨 입었던 최일환(1984년 추석)

등단작 읽기

선생님은 나를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

선생님 댁 심부름은

나만 시키고

하기 싫은 산수문제도

나를 시키고

어쩌다 답이 틀리면

좌악 입을 물다가

획 돌아 싱긋 웃고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

숙제 않은 날은

나도 함께 벌을 받고.

<1963년 ‘아동문학’ 6집>



이 동시는 1960년대 호남문단에 주춧돌을 놓았던 최일환(1939-2005)의 문단 데뷔작이다.

대부분의 문인들이 그러하듯 최일환도 등단작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문단의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게 없지만, 1960년대는 유독 중앙 문인과 시골 문인(?)의 차별은 오늘날 보다 더욱 심했다.

최일환은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1963년 ‘아동문학’ 6집에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온 터라, 그의 자존심은 대단했을 법 하다.

당시 조지훈은 심사평에서 “‘선생님은 나를’은 깔끔하고 재치 있는 작품이다.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는 지 미워하는 지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심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선생님은 나를 예뻐할까 미워할까를 앞뒤에 반복하면서 끄트머리 둘째 연에 놓은 솜씨가 대단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앞서 최일환은 ‘교육자료’지와 ‘새교실’지를 통해 이미 서정주와 이원수로부터 3회 추천 완료를 받은 상태였다. 이로써 연거푸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시골 문인’의 티를 벗고 당당하게 한국문단에 발을 디딘 것이다.


이 연재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시문학파기념관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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