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월)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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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광대 이지현씨는 연극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60대 중반의 나이에 이 한편의 모노드라마로 전국을 누빈다. 무대 위에서 판소리와 마술, 성대모사를 하는 걸 보면 타고난 광대의 운명이 느껴진다. 껑충한 키를 휘청거리며 익살맞은 연기를 하는 걸 보니 웃음 끝에 애잔한 마음이 든다. 만일 그가 80년 오월 광주를 겪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응원단장을 할 정도로 흥이 넘쳤던 청년은 지금쯤 무엇이 되어있었을까?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해줄 수 없는 청춘의 시간들….
80년 광주의 5월을 온몸으로 관통해 온 한 사나이 이지현씨는 한쪽 눈을 잃고 살아남았다. 이 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5월 진상규명과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져왔다. 배우로서 늦은 나이에 자전적 1인극 ‘애꾸눈 광대’로 무대에 선 것은 가슴 속에 담아둔 채 못다 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80년 오월 한 청년은 처참한 죽음을 목도했고 아비규환 속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 도청에 계엄군 진입이 예고된 공포의 날, 그는 도청을 빠져나와 약혼자의 가슴에 웅크리며 몸서리친다. 도망자의 부끄럼과 공포. 하지만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망자를 대신해서 살아남은 자가 짊어지고 가야할 몫은 참으로 가혹하다. 어찌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는가.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집을 떠난다. 그는 애꾸눈 광대가 되어 아들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지난해 초연한 이 작품은 연극 연출가 신동호 씨를 만나면서 올해는 더욱 짜임새 있게 다시 태어났다. 창작 판소리와 마술, 성대모사, 영상 등 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모노드라마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배우의 열정과 힘이 지칠 줄 모르고 지속된다. 이제 배우는 무대의 참 맛을 알면서 팔딱이는 생명력을 갖는 것이다.
사실 모노드라마는 참 외롭고 힘든 여정이다. 나 또한 모노드라마 아버지를 15년 동안 200회 이상 해오면서 홀로 고독한 순간이 참 많았다.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상대 배우 없이 무대를 홀로 채워야하는 고독과 치열함에 혼자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사람이 연기를 하지만 여러 캐릭터를 연기해야하고, 각각의 캐릭터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호흡해야한다.
또한 탄탄한 구성을 통해 모노드라마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관객과 호흡하며 수정 보완해나간다면,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개연성 있는 구성으로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어 가리라 기대한다. 기획적인 측면에서도 장기공연을 염두하고 추진한 공연이라면 관객 유치를 위한 고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대중성과도 직결돼는 이야기일 것이다. 단순히 80년 오월을 경험한 한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감성을 담아내며 공감을 유도해야한다. 치유와 희망의 언어가 관객에게 울림을 줄 때 비로소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로 자기 매김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비록 한쪽 눈을 잃어 애꾸눈이 되었지만 현실을 일목요연하게 보고 한길을 걸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라는 고백에 객석은 숙연해진다. 두 눈 멀쩡하나 똑바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3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이 오버랩 되면서 긴 한숨이 난다. 오월 광주는 폄훼되고 왜곡된 채 오월 영령들에 대한 부관참시가 자행되고 있다.
오월, 광주에서는 뮤지컬 빛골 아리랑과 애꾸눈 광대가 무대에 올랐다. 오월은 이제 광주만의 것이 아니다. 광주의 정신이 민주주의와 인류애의 가치를 끌어올린 역사적 진실로 승화돼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은 더욱 더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는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5·18이냐고 비난을 하더라도 멈춰서는 안 될 일이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이자 정신인가? 그런 의미에서 애꾸눈 광대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애꾸눈 광대가 오래도록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광대로 우리 곁에 있어주길 기대한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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