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극단 연극 ‘나의 살던 고향’

점점 추워지고 있다. 소슬바람에 후두두 떨어져버리는 은행잎들이 무정하게만 느껴진다. 문득 지난 봄의 벚꽃이, 지난 여름의 소나기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12개월을 네 토막으로 나눠서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연을 한 편 씩 올리기 위해선 3개월 단위로 움직인다. 작품 기획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지만, 배우들이 연습에 들어가서 무대에 서기까지 족히 3개월은 걸린다. 그러다보니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다. 한 계절씩 점핑하는 기분이다.



얼마 전 광주시립극단의 올해 마지막 정기공연 ‘나의 살던 고향’을 마쳤다.

일상의 소중함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자는 주제를 담았다. 유쾌한 웃음 끝에 따뜻한 눈물을 적시게 하는 작품이었다. 매 공연마다 만석이었다.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정작 한회 한회가 끝날 때마다 마음 한켠이 허전해졌다. 고교 연극반 시절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앓아온 열병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밀려오는 허전함과 아쉬움, 커튼콜 박수 소리와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텅 빈 객석과 세트철거가 시작되는 무대를 보고 있으면 순간 외로움이 밀려온다. ‘조금만 더 머물러줬으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극 중 주인공 영희가 잠시 이승에서 외친 마지막 대사 ‘이젠 안녕’을 조용히 되뇌어본다.



연극은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예술이다. TV드라마나 영화처럼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지는 예술이다. 반복재생도, 다시감기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연극은 순간의 예술이다. 추억으로 기억되는 예술이다. 순간의 아름다움 때문에 연극이 더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간은 꼭 사라짐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은 피고 진다. 가을 낙엽 끝엔 겨울이 오지만, 겨울 추위는 다시 봄의 따스함을 불러들일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짧고 유한한 삶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행복을 찾는다면, 우리의 삶은 빛나는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수많은 별 가운데 지구가 늘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지금, 꽃피는 봄을 맞이하려면 오늘 하루도 소중하게 보내야겠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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