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인 지난 8일 최고온도가 37도에 달하며 폭염특보가 발령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선 회원들이 구룡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아래에서 굵은 땀을 식히며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느샌가 부쩍 커버린 아들,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더 왜소해져버린 아버지. 父子는 아무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지난 8일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 했으나, 문득 산행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키우리 지리산 산행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키우리 봉사회만 다녔으나, 아빠가 늘 함께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등산이 아닌 둘레길이니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셔서 따라나섰다.

이날 광주비엔날레 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인사를 하니 많은 산악회원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버스에서 멀미를 간혹하는데 아빠가 그 점을 고려해 미리 관계자에게 말씀을 드려 가능한 앞쪽자리를 부탁하셨다는 말에 조금 감동을 받았다. 처음에는 쉽게 간다고 말씀드렸으나, 다른 산악회원님들을 잘 모르고 혹 폐가 되지는 않을까 등등 여러 걱정을 많이 했으나 버스에 도착했을 때, 날 반겨주시고 환영해주시는 산악회원님들 덕분에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사랑은 하나이어라” 구룡치의 연리지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회원들.

산행은 당초에 A코스와 B코스가 있었으나 출발 버스안에서 정순용 산악대장님께서 회원들이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중간코스를 만드시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마침내 지리산에 도착한 후, 단체로 사진 한 장을 찍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와 뜨거운 햇볕이 키우리산악회를 반겼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점점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때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이번 산행 목적”이라며 동행한 사진작가께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천천히 숲속 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뚫고 나갈 듯이 높이 자란 소나무를 보면서, 왠지 모를 경건함을 느꼈다.

키우리산악회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여행에 나선 정유찬(광주 상일중 2)군과 아버지 정계두(유진투자증권 광주북지점장)씨가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

평소 현대의 기술과 전자기기로 살아가는 나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숲 속 풍경을 보고, 휴식도 취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구룡폭포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는 길이 약 30m에 상류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구룡폭포는 그 중 9개의 절경 중에서도 최고의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폭포라고 해서 급경사로 떨어지는 그런 폭포일 줄 알았는데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폭포였다. 폭포 위쪽의 다리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절경을 감탄하고 여러 회원님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폭포 안으로 들어가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 분은 많은 등산객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자리에서 머물렀고 그런 모습을 보며 사회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피해나 불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본격 산행에 앞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회원들.

그렇게 힘든 여정을 끝마치고 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앞선 회원 분들의 배려로 뒤쪽 회원들과 우리는 비교적 빠르게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둘러 앉아 자신의 도시락을 꺼냈다. 회원들이 싸온 도시락을 보니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더 감동받은 것은 모든 회원들이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분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싶으셔서 자신의 도시락에 좀 더 많은 양을 담아 오셨다는 것이다.

난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눔의 정과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따뜻한 온정과 진수성찬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 후 주변의 계곡에 몸을 담궜다. 하루 피로가 모두 풀릴 듯한 시원함과 상쾌함이 몸을 덮었다.

비록 시간이 별로 없어 서둘러 산행을 진행해야 해 오랜 시간동안 계곡에 머물 수는 없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땀 흘린 후에 얻는 대가가 얼마나 달고 의미 있는지를 다시한번 마음속에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오후 산에서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광주로 돌아오기 전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발이 다쳐 참석을 못했던 총무님께서 음식과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그런 총무님의 정성이 들어갔는지, 모든 회원분들이 음식을 맛있게 드셨고, 결국 음식도 남기지 않고 깔끔히 먹고 광주로 돌아갔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하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고 이내 소나기가 내려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줬다.

이번 산행은 많이 배워가는 산행이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렇게 의미있고 값진 광경과 경험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빠와 함께 숲을 걸으며 평소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 등의 핑계로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전까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아빠의 다른 면도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글=정유찬(광주 상일중 2학년)

/사진=이광호 (광주매일신문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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