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粥 (식죽)
매월당 김시습
흰 죽이 미끄러워 아침밥이 편안한데
배부른데 누워서 한단의 꿈 꾸어보네
인생사 평생의 나날 고생일이 많더라.

白粥如膏穩朝餐 飽來偃臥夢邯鄲
백죽여고온조찬 포래언와몽감단
人間三萬六千日 且莫 多苦酸
인간삼만륙천일 차막휴휴다고산

환자가 아니라 해도 죽(粥)은 위를 편안하게 한다. 아침 일찍부터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아침 식사는 죽이 제격이라 한다. 아침엔 위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를 편안하게 하고, 위의 수축 운동을 돕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을 하고 나서 아침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있어 잠을 청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인간 살아가는 한 평생 3만6천 나날인데, 아침밥으로 배부르자 편히 누워 한단의 꿈을 꾸네’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아직 더는 떠들지 말게, 고생할 일이 많으리니(食粥)’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 학자이다. 다른 호는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 등으로 알려진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시호는 청간(淸簡)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원성왕의 아우 주원(周元)의 후손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흰죽이 미끄러워 아침밥으로는 편안하고 / 아침식사 이지만 배 부르자 편히 누워 한단의 꿈을 꾼다네 // 인간 살아가는 한 평생 3만6천 나날이니 / 아직은 떠들지 말게, 고생할 일이 더 많으리니]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죽을 먹으면서]로 번역된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이란 고사가 있다. 노생(盧生)이란 사람이 한단 땅에서 여옹의 베개를 빌려서 잠을 자며 80년간의 영화로운 꿈을 꾸었는데, 깨고 보니 여옹이 누른 조밥을 짓는 짧은 사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죽은 곡식을 물에 오래 끓여 알갱이를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환자들 회복을 위해서나, 위가 좋지 않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다.



시인은 위와 같은 점들에 착안해 죽에 대한 매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쌀로 쑨 흰죽이 부드럽고 미끄러워 아침밥으로는 편안하고 배가 부르자 편히 누워 한단의 꿈을 꿔 본다고 했던 시상을 일으켰다. 한단의 꿈은 인생과 영화(榮華)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죽 한 그릇을 먹고 영화로운 꿈까지 꿨던 모양이다.



살아가는데 100년을 기대수명을 예상했을 때 평생 3만6천일진데, 그것이 전부라고 아직은 떠들지 말기를 당부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직은 고생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하면서. 작은 일에 젖어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부닥치게 될 큰 일을 예견하고 더욱 힘쓰라고 가르치는 시상이겠다.



※한자와 어구

白粥: 흰 죽. 如膏: 미끄럽다. 穩: 편안하다. 朝餐: 아침 밥. 飽來: 배가 부르다. 偃臥: 편안하게 눕다. 夢邯鄲: ‘한단지몽’의 고사. // 人間: 인간. 사람이 살아감. 三萬六千日: 36,000일. 곧 100년임. 且莫: 또한 ~하지 말라. 多: 많다. 苦酸: 쓰고 시다. 곧 살아가면서 많은 고생을 함.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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