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可無不可吟(무가무불가음)
미수 허목

한 번씩 오가는 것 그나마 진리란데
무에서 시작하고 무에서 나누어지네
마음 속 무엇이 옳으며 옳지 않다 하리오.
一往一來有常數 萬殊初無分物我
일왕일래유상수 만수초무분물아
此事此心皆此理 孰爲無可孰爲可
차사차심개차리 숙위무가숙위가


흔히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을 쓴다. 가깝게 하지도 못하겠고, 멀리 하지도 못하겠다는 뜻이겠다.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는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불편한 것도 없고, 불편하지 아니한 것도 없다는 뜻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겠다. 가장 중용인 것도 같으면서 그렇지 않음도 생각한다. ‘이 일이나 이 마음도 다 이러한 이치일 것이니,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겠는가’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온갖 사물은 처음은 무에서 사물과 나누어진데’(無可無不可吟)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미수(眉 ) 허목(許穆·1595-1682)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사상적으로 이황·정구의 학통을 잘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킨 기호 남인의 선구자로 남인 실학파의 든든한 기반이 됐다. 전서에 독보적 경지를 이뤘다. 문집 ‘기언’, 역사서 ‘동사’ 등을 편집했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 진리일지니 / 온갖 사물 처음은 무에서 사물과 나눠지네 // 이 일이나 이 마음도 다 이러한 이치일 것이니 /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다 말하리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는 것도 없나니]로 번역된다. 혹 이 세상에 진리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난쟁이 마을에 보통 사람이 가면 병신을 취급을 받는단다. ‘저 병신이 왔다’는 핀잔을 하게 된다는 뜻이겠다. 누가 보통이고 진실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을 보이는 경우다. 이렇게 보면 옳은 것도, 옳지 않는 것도 없는 것이 세상사인지 알 수 없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옳고 옳지 않는 일의 판단의 미묘함을 보이면서 자신의 정의를 내리려는 시상을 꼬기작거린다. 인간은 한번 오고 한 번 가는 것이 그 바른 진리일 것이니, 온갖 사물은 처음은 무에서 다른 사물과 뚜렷하게 나눠진다고 했다. 무에서 유로 나눠졌다가 다시 무의 경지로 돌아가는 논리가 진정한 철학자적 자세리라.


화자는 대철학자답게 인간의 진리를 논하는 엄연한 자리에 서면서 유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일이나 이 마음도 다 이러한 이치일지니(此事此心皆此理)], 지금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다고 하겠는가를 되묻고 있다.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는 것도 없다는 간단한 진리 앞에 서있음도 간과하게 된다.

※한자와 어구

一往一來: 한번 왔다가 한 번 가다. 有常數: 떳떳함이 있다. 萬殊: 온갖 사물. 初無: 처음은 무에서. 分物我: 사물이 나와는 나누어지다. // 此事: 이런 일. 此心: 이런 마음. 皆此理: 다 이런 이치다. 孰爲: 무엇이 옳다. 無可: 가하지도 않다. 孰爲可: 무엇을 가하고 하겠는가.

/시조시인·문학평론가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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