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한쪽에 서 있는 신호리 석주(전남도문화재자료 제185호)라 불리는 돌기둥은 높이가 4.22m에 이른다.

며칠째 추운 날씨가 계속됐다. 한낮에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어제부터 날씨가 풀리기 시작해 낮 시간에는 영상기온을 되찾았다. 남파랑길 69코스를 걷기 위해 고흥반도로 향한다.

남파랑길 69코스는 도화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된다. 고흥군 도화면은 섬으로 이뤄진 금산면(거금도)과 봉래면(외나로도)을 제외하고는 고흥반도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한 면이다.

도화면의 경계는 면소재지에서도 남쪽으로 9㎞ 정도를 더 내려가지만, 남파랑길은 길게 돌출된 도화면 해변을 따라 걷지 않고 북서쪽에 솟은 천등산 임도를 넘어 풍양면으로 이어진다.

도화성당 앞을 지나니 도화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도화중·고등학교 옆길을 따라 걷다가 도화천 제방을 따라서 간다. 하천에는 갈대가 무리를 지어 겨울을 나고 있다. 둑길을 지나 농로를 따라서 걷는데 정면으로 천등산이 바라보인다. 농로 주변은 넓은 들판을 이뤘다. 들판을 가운데 두고 여러 마을이 둥지를 틀었다.

신호저수지 제방을 바라보면서 걷다가 들판 한쪽에 서 있는 돌기둥을 만난다. 신호리 석주(전남도문화재자료 제185호)라 불리는 돌기둥으로, 높이가 4.22m에 이른다. 마을에서는 석당간이나 탑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제 때에는 이곳에 한자사 또는 한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호리 석주 앞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선다. 골짜기 하부에는 신호제라 불리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저수지 물은 아래쪽 들판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저수지 제방에 서니 안쪽으로 골짜기가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천등산이 우뚝 서있다.

신호저수지를 지나 임도를 따라 걷는다. 임도 주변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가끔 소나무가 있기도 하지만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나목 상태로 겨울을 나고 있다. 활엽수는 모든 잎을 떨구고서 추운 날씨를 이겨낸다. 자신의 몸을 최대로 슬림화해서 눈보라를 견뎌낸다.

아래쪽 계곡에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청아하게 들려오는 물소리가 복잡한 세상사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 골짜기는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야말로 인간내면에 숨겨진 마음의 근원일 것이다.

오늘은 주로 산속 임도를 따라 걷는다.

지금까지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잠시 산길을 걸었던 적은 있지만, 1시간 이상 산속 숲길을 걷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로 해변을 따라 이어진 남파랑길을 걷다가 모처럼 산길을 걸으니 마음이 깊어지는 것 같다. 길은 산비탈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간다. 가끔 조망이 트일 때면 주변의 산줄기들이 첩첩하게 다가온다.

산허리를 돌고 돌아 철쭉공원이 있는 해발 410m 높이의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고갯마루 주변은 온통 철쭉나무 천지다. 봄철이면 환상적인 철쭉동산이 되는 곳이다.

철쭉공원이 있는 해발 410m 높이의 고갯마루 주변은 온통 철쭉나무 천지다. 봄철이면 환상적인 철쭉동산이 된다.

천등산 정상(554m)은 이곳 철쭉공원에서 능선을 따라 0.9㎞ 정도를 더 올라가야한다. 천등산 정상에는 옛날 불을 피워 적의 침입 같은 주변의 위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달했던 봉수대가 있다.

천등산 동쪽 비탈에 창건 이래 비구니 사찰로 이어져온 금탑사가 있다. 금탑사에는 괘불탱(보물 제1344호)과 괘불궤, 그리고 지방문화재 제102호인 극락전과 산신각, 범종각, 일주문, 요사채 등이 있다.

금탑사 주변에는 비자림(천연기념물 제239호)이 울창하게 우거져있다. 4만여 평의 면적에 3천300여 그루 비자나무가 울창하게 자리해 장관을 이룬다.

철쭉동산에서 보는 조망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멀리 팔영산과 포두면 해창들판이 어울리고, 가깝게는 비봉산과 마복산 같은 산봉우리들이 곡선미를 자랑한다. 남서쪽에서는 거금도와 주변 바다가 다도해를 이뤘다.

철쭉동산에서 보는 조망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멀리 팔영산과 포두면 해창들판이 어울리고, 가깝게는 비봉산과 마복산 같은 산봉우리들이 곡선미를 자랑한다.

날씨가 흐려 섬과 바다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아 아쉽다. 대신 해무에 감싸인 다도해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천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솟은 딸각산이 거금도 쪽 바다와 행복하게 어울렸다. 딸각산이라는 이름은 바위를 밟으면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 딸각산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딸’을 발음이 비슷한 ‘달’(月)로 바꿔 월각산이라 했단다.

천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솟은 딸각산이 거금도 쪽 바다와 행복하게 어울렸다.

철쭉공원에서 임도를 따라 천등마을로 향한다. 임도를 걷다보면 딸각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남쪽에 거금도 적대봉이 우뚝 서 있고, 주변 바다는 한없이 잔잔하다. 아기자기한 바위를 나목들이 감싸고 있는 딸각산은 한쪽에 진녹색 삼나무 숲이 있어 대조를 이룬다. 원뿔처럼 뾰쪽하게 솟은 별학산도 삼나무 숲 뒤에서 고개를 내민다.

천등산 임도는 걷는 내내 숲과 함께 한다. 울창한 숲은 여름철에는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잠재워 포근하게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임도를 걷다 천등산을 바라보면 천등산 북서쪽 능선을 장식하고 있는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능선을 이룬 기암절벽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다. 천등산 바위 봉우리들은 푸른 바다와 거금도를 바라보며 행복해한다.

임도를 걷다 천등산을 바라보면 천등산 북서쪽 능선을 장식하고 있는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등산 자락에 자리한 농경지와 마을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천등산 임도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천등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바위 봉우리가 원뿔처럼 솟아있는 별학산이 전모를 드러내준다. 고흥군 풍양면 송정리 천등마을은 천등산과 딸각산, 별학산에 감싸여 있어 요람처럼 포근하다. 주변 논에서는 벼농사를, 밭에서는 유자를 많이 재배한다. 유자 재배지로서 천혜의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는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약 60-70%를 생산한다. 고흥에서도 풍양면에서 유자를 많이 재배한다.

고흥군 풍양면 송정리 천등마을은 천등산과 딸각산, 별학산에 감싸여 있어 요람처럼 포근하다.

천등마을 농로에서 천등산을 바라보니 암릉을 이룬 능선 위에 천등산 바위 봉우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천등산을 가장 실감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천등마을이 아닐까 싶다. 천등산 자락에 둥지를 튼 여러 마을 중에서도 이 마을을 천등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백석마을에 도착하니 남향을 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앞 중앙에 자리한 마을회관에 마을주민 여러 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독거노인이 많은 농촌마을 주민에게 마을회관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소통공간이자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공동체공간이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마을회관만은 온기가 느껴진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남파랑길 69코스는 해변길을 따라가는 남파랑길 다른 구간과 달리 천등산 임도를 따라 걷게 된다. 해변과 떨어져 걷게 되지만 임도에서 멀리서 다가오는 다도해 풍경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코스 : 도화버스터미널→도화성당→신호제→천등산 임도→철쭉공원→천등산 임도→천등마을→백석마을 버스정류장
※거리, 소요시간 : 15.7㎞, 4시간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도화버스터미널(고흥군 도화면 중심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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