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는 푸른 이삭들이 활짝 피어 건강한 기운을 전해준다. 이삭을 내민 청보리밭만으로도 충분한데, 보리밭 아래쪽에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지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봄이 무르익고 있다. 대지가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대지가 푸르러지니 세상도 살아 꿈틀거린다. 청보리가 이삭을 피우는 시기에 맞춰 고창으로 향했다. 오늘은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학원농장을 경유하는 ‘여백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지난 해 가을 벼가 누렇게 익었을 때 고창에 왔으니 6개월 만에 ‘고창 여백의 길’을 다시 찾은 것이다.

무장면 죽림마을에 도착하자 주변 풍경이 낯익다. 20여 가구에 불과한 조그마한 농촌마을은 한없이 조용하다.

죽림마을경로당 앞에서 ‘여백의 길’ 걷기를 시작한다. 죽림마을을 등지고 농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농촌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원초적인 ‘땅’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땅이야말로 생명의 토대이자 생명 그 자체다.

주변은 비탈진 구릉지와 평지의 들로 이뤄져 있다. 이런 지형에 맞춰 ‘여백의 길’ 역시 구릉지 낮은 언덕을 넘어 농로를 따라 걷다가 작은 마을을 만나곤 한다. 언덕을 넘기 전에 조그마한 저수지를 만난다. 이 저수지에 모아진 물은 아래쪽 논의 생명줄이 된다. 저수지 제방을 아래로 골짜기 논과 방금 지나온 죽림마을이 바라보인다.

언덕주변에는 복분자밭과 양파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복분자는 고창의 대표적인 농작물 중 하나다. 봄철 파종기를 맞아 고추를 모종해 놓은 밭도 많다. 완만한 구릉지 밭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구릉지 밭에서는 사료용 풀을 재배하기도 한다. 사료용 풀과 함께 소를 사육하는 우사가 종종 눈에 띈다.

옛날에는 농가마다 집에서 소를 몇 마리씩 키웠지만 요즘은 수십에서 수백 마리에 이르는 소를 집단으로 키운다. 축동마을 앞 비닐하우스에서는 수박을 재배하는 곳이 많다. 이 마을뿐만 아니라 고창 땅 곳곳에서는 수박을 많이 재배한다.

‘고창수박’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고창은 수박의 주산지다. 고창은 황토 흙이 비옥할 뿐만 아니라 맑고 깨끗한 물과 큰 일교차가 수박이 자라기에 좋은 자연조건을 갖췄다. 이런 자연조건 때문에 고창에서 나는 수박은 당도가 뛰어나고 과육이 아삭아삭하다.

축동마을을 등지고 구정마을로 향한다. 구정마을로 넘어가는 구릉지길을 걷고 있는데 ‘동학진격로 걷기챌린지’ 이정표가 눈에 띈다.

고창군에서는 지난달 25일 ‘제131주년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기념제’를 개최했다. 무장기포기념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4월26일부터 5월11일까지 토·일·공휴일에 ‘동학진격로 걷기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고창군 공음면은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진 농민봉기가 시작된 곳이다. 전봉준, 손화중 등 동학혁명 지도자들이 1894년 3월20일 지금의 공음면 구암리에서 동학교도 4천여 명을 모아 봉기의 이유와 목적 등이 담긴 포고문을 낭독하고 농민봉기의 시작을 알렸다. ‘동학진격로 걷기챌린지’는 131년 전 동학농민들이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며 진격했던 길을 걸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리는 프로그램이다.

신촌마을 앞 농로를 따라 걷는데, 보리밭에 보리이삭이 활짝 피어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추수를 끝내면 논과 밭에 보리를 심었는데, 요즘 농가에서 보리를 심는 경우가 드물다. 보리밭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에 겪었던 보릿고개가 생각난다. 과거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보리를 수확하기 직전인 5월과 6월을 보릿고개라 했다. 이 때는 지난해 수확한 쌀은 바닥났는데 아직 보리는 수확할 때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시기다. 식량이 떨어진 이 시기를 보내는 일이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해 ‘보릿고개’라 불렀다.

하천 둑길을 따라 걷다가 경사진 언덕길로 올라선다. 주변에는 대왕참나무를 재배하고 있고, 위쪽에는 운치있는 소나무가 작은 숲을 이뤘다. 뒤돌아보면 산에 기댄 마을과 농경지를 이룬 들판이 평화롭다. 솔숲에서 노랗게 핀 유채꽃이 고혹적인 향기를 내뿜어준다.

언덕을 넘어가자 밀밭이 나타난다. 보리와 밀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잎과 이삭이 약간 다르다. 보리 잎에 비해 밀 잎은 가는 편이고, 이삭도 보리에 비해 밀은 더 길쭉하다. 푸른 밀밭 아래로 보이는 농가 한 채가 정다워 보인다.

‘여백의 길’은 학원농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따르지 않고 용수천 제방을 따라서간다. 주변은 모내기를 앞둔 논과 비닐하우스들이 공존하고 있다. 학원농장 서쪽 비탈을 따라 청보리밭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구릉지에 있는 넓은 청보리밭은 능선에 서 있는 가로수들과 행복하게 어울렸다. 학원농장 구릉지 능선에 올라서니 드넓은 보리밭이 펼쳐진다.

청보리밭 가운데에는 원두막도 있어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드넓은 청보리밭과 밭가에 일렬로 서 있거나 밭 가운데 모듬으로 서있는 연두색 나무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가져다준다. 보리밭을 지나니 유채꽃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유채밭과 보리밭 사이로 난 농로 가로수를 따라 걷는 길이 운치 있다. 걷다보면 오른쪽에서는 푸른 청보리밭이, 왼쪽에서는 노란 유채꽃밭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농로를 따라 전망대쪽으로 올라가니 학원농장의 핵심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전망대 주변에서는 아래쪽으로 청보리밭과 유채꽃밭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보리밭과 유채꽃밭 사잇길을 따라 구불구불 꽃길을 걷는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행복해한다. 보리밭에는 푸른 이삭들이 활짝 피어 건강한 기운을 전해준다. 이삭을 내민 청보리밭만으로도 충분한데, 보리밭 아래쪽에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지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보리밭과 유채꽃밭은 멀리서 다가오는 외곽의 산줄기들과 주변에 붕긋붕긋 솟은 구릉지들이 배경이 돼 완벽한 그림이 된다.

학원농장은 완만한 경사를 지닌 구릉지에 자리해 위쪽이나 아래쪽 어디에서 보아도 청보리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보리밭과 유채꽃밭은 멀리서 다가오는 고창 외곽의 산줄기들과 주변에 붕긋붕긋 솟은 구릉지들이 배경이 돼 완벽한 그림이 된다. 일상에 찌든 사람들이 보리밭길을 걸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또한 자연풍경 못지않게 아름다운 광경이다.

고창 청보리밭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폭싹 속았수다’·‘연인’·‘도깨비’·‘백일의 낭군님’ 같은 드라마를 이곳 청보리밭과 유채꽃밭에서 찍었다.

고창 청보리밭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폭싹 속았수다’·‘연인’·‘도깨비’ ‘백일의 낭군님’ 같은 드라마를 이곳 청보리밭과 유채꽃밭에서 찍었다.

학원농장은 사람들에게 사철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봄철에는 청보리 유채꽃을, 여름철에는 해바라기를,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을 만날 수 있다. 청보리밭과 유채꽃밭 사잇길을 걸으며 꽃밭의 나비가 된다. 청보리와 유채꽃이 만든 봄의 향연 속으로 빠져든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고창 여백의 길 죽림-학원농장 코스에서는 봄철이면 청보리 유채꽃 사잇길을, 가을이면 메밀꽃 사잇길을 걸을 수 있다. 여백의 길은 구릉지 아래에 자리한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농촌마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코스:죽림마을경로당-사미마을회관-축동마을-구정마을-신촌마을회관-생명샘교회-학원농장
※거리, 소요시간 : 10.2㎞, 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죽림마을경로당(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월림죽림길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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