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논설실장

지난한 의정갈등의 전면에 의대생들이 섰다. 제적을 피하기 위한 등록 이후엔 수업 거부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어떻게든 집단유급을 피해 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려는 정부와 대학을 상대로 내년에 24·25·26학번 1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이른바 ‘트리플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학 측은 원칙대로 유급과 제적 처분으로 인한 결원을 편입학을 통해 채운다는 계획이지만 고민이 깊다.

공중보건의 제도, 군의관 운영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군 입대 휴학으로 선회, 학적을 유지하려는 경우도 증가하는 만큼 향후 인력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의대생은 통상 졸업 후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면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등록돼 복무해왔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다시 물러났다. 수업 참여율이 20%대로 충분하지 않는데도 2026학년도 모집 정원을 2천명 증원 이전인 2024년도 ‘3천58명’으로 되돌렸다. 2027학년도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막중한 의료개혁 과제를 새 정부에 넘기는 모양새다. 1년 넘도록 고통을 참아온 환자들, 시민단체는 백기투항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버티면 이긴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었다. 교묘한 꼼수, 기회주의의 승리다. 의대 교육의 파행은 더 심화될 수 있다. 대학 내부의 혼란은 더 키우는 꼴이다. 의료 현장의 불편은 더 가중될 게 뻔하다.

의대생 또한 대학 구성원으로 학칙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최대한 설득하더라도 대학 측은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한다. 학내에서는 과도한 혜택, 특수 신분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와 같은 학사 유연화 조치는 없어야 할 것이다. 휴학 승인, 유급 통보, 제적 등은 총장의 고유 권한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수업 요건 완화 등 봐주기는 안 된다. 고등교육법령의 유권해석 기관인 교육부가 휴학 불승인을 요청했으니 소송으로 가더라도 학생들의 승소를 장담하기 어렵다.

의료계는 다음 정부와 마주 앉을 심산이다. 총궐기대회를 예고한 의사협회는 기획본부를 출범하고 조기 대선 국면에서 영향력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 면책, 구제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기득권 카르텔과 동행했던 지난 정부의 폐해를 익히 경험했던 바,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동맹휴학이 끝나는 듯 했다. 전남대와 조선대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강의실이 계속 비어 있다. 제적 조치를 면하고자 복학 신청서만 제출한 것이다. 일부 대학은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즉각적인 유급 처리 절차에 나서고 있다. 연속 2회 유급이나 합산 3-4회 유급이면 제적을 피할 수 없다.

비상계엄을 통해 전공의 처단을 시도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과 함께 의정갈등도 국면 전환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아니었다. 최고 결정권자가 사라진 마당에 의료계에선 대화보다는 투쟁의 목소리가 더 높다. 강경하다.

동료에게 동참하지 않았다며 배신자의 굴레도 씌웠다. ‘감귤’이라는 은어로 조롱하기도 했다. 사법 당국의 강력한 수사가 요구되고 있다. 메디스태프 등 의사·의대생 커뮤니티 중심으로 확산되는 신상 정보 유포와 같은 행위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다. 긴급히 폐쇄해야 한다.

한편으로 정부가 2026학년도 전남지역 최대 숙원인 국립의대 설립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지역 홀대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농어촌에서 근무할 신규 공보의도 감소하는 흐름이다. 올해는 전년보다 57명이 줄었다. 전남도는 6월 조기 대선에 제1호 공약으로 추진해줄 것을 각 정당에 요청하고 있다.

정치의 영역이 될 수 없다. 철저하게 수요에 따라야 한다. 당장에 공공·지역·필수 분야가 비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응급환자는 거리를 헤매고 있다. 도서 주민들은 약 처방도 못 받고 신음하는 중이다. 의사들은 의료의 본질, 후배의 미래를 지키는 싸움이라고 규정하지만 국민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한사코 피하고 싶어도 의대생들이 안 돌아오면 대규모 유급으로 최악의 트리플링 사태가 현실화된다. 분리 교육도, 졸업 이후 수련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료 인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을 낳는다.

생명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따돌림과 위협 속에서도 병원에 남은 전공의가 있다. 대학에 남아 수업 받는 의대생이 있다. 의사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이다. 의업에 임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그동안 충분히 할 만큼 했다. 학생이 있어야 할 곳은 학교다. 강의실이다. 더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