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목)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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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개관 90주년이라서 특별기획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준 영화를 함께 보고 직접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봉준호의 극장 노트’를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친구들이 모여 영화 이야기, 극장 이야기로 수다방이 열렸다.
1935년 일제 강점기에 개관하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1950년 6·25, 1980년 5·18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곳, 광주극장. 국내 유일의 단관극장으로 남아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품어주고 있는 엄마 같은 광주극장에서 친구들이 만나기로 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마더(흑백판)’ 등이 상영되고, 11월8일은 봉준호 감독에게 영향을 준 ‘바톤 핑크’를 함께 관람하고 시네토크가 열렸다. 1천517석 광주극장 1층과 2층 관객석에 가득 찬 사람들, 영화와 영화관은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가슴 뛰게 하는 걸까?
봉준호 감독과 함께 감독이 선정한 영화를 광주극장에서 보는 시간이 왔다. 1991년 개봉한 조엘 코엔 감독의 ‘바톤 핑크’, 영화가 상영되기 전 봉준호 감독 앞으로 팬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감독은 네임펜으로 봉준호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때 2층에서 흰 리본이 실에 매달려 봉준호 감독의 손 앞에 내려왔다.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됐고, 리본에 사인을 받은 끈은 2층으로 유유히 흔들거리며 올라갔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눈앞에 그 장면이 어른거린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환호하는 순간을 만들어 준 2층 관객의 유쾌한 퍼포먼스였다.
광주극장은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그 건물로 들어가면 시공간을 떠난 특별한 나를 만나는 장소가 된다.
중·고교시절 기말고사가 끝나면 단체영화 관람이 있었다. 학생 수가 많았던 그 시절 두 학교가 함께 영화를 보게 되면 통로까지 빽빽하게 앉아서 옆 친구의 땀 냄새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같은 영화를 보곤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테스’, ‘벤허’를 보며 비극적인 사랑과 삶의 웅장함을 느끼고, 1980년대 후반에는 홍콩영화 속에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를 보며 마치 공연장에서 호응하듯 주인공이 돼 몰입하던 그 찬란했던 어느 날로 시간을 돌려놓는 곳이 광주극장이다. 기말고사를 망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단체 관람하던 어느 날, 비비안 리가 등장할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숨죽이며 영화에 몰입되어 있을 때, 비비안 리와 클락 케이블의 마지막 키스신! 그 순간 관객석에서 동시에 터지는 “음~” 신음 소리는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내일은 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거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 명대사처럼 영화를 보며 한바탕 웃음과 같이 망쳐버린 기말고사의 기억은 날아갔고, 다시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을 선사한 곳이 광주극장이다.
광주극장 영화표 네 장을 예매하고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 세 명에게 전화했다.
“광주극장에서 우리 영화 볼까요?”
우리는 두 시간 미리 도착해서 광주극장만의 명소, 미술실을 구경했다. 박태규 화백과 시민들이 직접 그린 영화 간판에 감동하고, 극장 바로 옆에 있는 빵가게에서 갓 구운 빵을 뜯어 먹으며 골목을 어슬렁거렸고, ‘소년의 서’ 서점에서 책 냄새를 맡고 골목 벼룩시장을 구경했다. 영화를 보며 함께 감탄하고 저녁엔 서쪽 하늘의 노을을 배경으로 광주막걸리에 취했다.
광주에는 광주극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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