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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리랑을 들을 때마다 동양철학의 순환을 떠올린다. 아리랑 고개는 단순한 이별의 고개가 아니다. 넘어가면 다시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경계다.
음(陰)이 극에 이르면 양(陽)이 생기고, 양이 극에 이르면 다시 음으로 돌아가듯 우리의 역사 역시 수많은 시련과 회복을 반복해왔다.
한(恨)을 품고도 노래했고, 떠나보내면서도 다시 만날 것을 믿었던 민족의 정서가 아리랑 안에 들어 있다.
오행(五行)으로 보아도 아리랑은 흥미롭다. 목(木)은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이고, 화(火)는 세상으로 퍼지는 열정이며, 토(土)는 삶의 터전, 금(金)은 결실과 자존, 수(水)는 깊은 한과 기억이다. 다섯 기운이 돌고 도는 것처럼 우리의 역사도 상처와 성장, 흩어짐과 다시 모임을 반복해왔다.
명리학(命理學)에서도 운(運)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른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고, 메마른 땅에도 때가 되면 비가 내린다.
한때 전쟁과 가난을 겪었던 대한민국이 지금 경제와 국방, 반도체와 기술, 그리고 K-POP·영화·드라마·음식까지 문화의 힘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모습도 하나의 거대한 운의 변화처럼 보인다.
서산대사와 탄허스님에게는 훗날 우리나라가 크게 일어나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여러 예언담이 전해진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의 예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선인들조차 이 땅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리랑은 ‘나를 버리고 가는 임’을 원망하는 노래이면서 동시에 그 고개를 끝내 넘어가는 노래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힘인지도 모른다. 아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노래로 바꾸고, 패배를 배움으로 바꾸며, 다시 일어선다.
세계인이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지금, 필자는 이것을 단순한 국뽕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우리의 것을 지키면서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운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행운만이 아니다. 긴 세월 쌓인 노력과 문화가 때를 만나 꽃피는 것도 운이다.
아리랑 고개를 수없이 넘어온 대한민국이 이제 자신의 노래로 세계인의 마음을 넘고 있다.
최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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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