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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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홍콩 맥리호스트레일 샤프피크 코스 일

꼭꼭 숨겨진 비경 속에서 ‘평화로운 여유’를 즐기다

  • 입력날짜 : 2018. 08.21. 18:05
샤프피크 정상에 오르면 바다너머로 광동성 선전시의 산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호텔 앞에서 홍콩 북동쪽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사이쿵(西貢)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맥리호스트레일 샤프피크코스를 걷기 위해서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정류장마다 승객들이 탔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홍콩시내와는 달리 홍콩 북쪽 사틴(沙田) 신도시에는 싱문강(城門河)이 유유하게 흘러간다. 어느새 싱문강은 바다에 합류한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해변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가며 실시간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차창 밖에서 다가오는 호수 같은 바다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니 어느새 사이쿵에 도착해 있다. 사이쿵은 홍콩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작은 해안도시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붐비는 곳이다. 아름다운 바다풍경은 물론이고,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부두에서 페리를 타고 주변의 섬이나 해변을 여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맥리호스트레일을 걷기위해서는 거쳐 가야할 마을이기도 하다.
맥리호스트레일 출발지점인 서만정(西灣亭)으로 가는 24인승 미니시내버스를 탄다. 사이쿵에서 20여분을 달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서만정에 도착했다. 등산로 초입에는 사이완(西灣) 이정표가 서 있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오지에서 자연의 소리는 적적하고 고요하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명상음악처럼 들려온다.

서만정에서 출발해 10여분 걸었을까? 하이아일랜드저수지(萬宜水庫)가 길 아래로 펼쳐진다. 동쪽과 서쪽 두 군데에 댐을 막아 만들어진 하이아일랜드저수지는 주변 산봉우리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이 됐다. 잔잔한 호수와 붕긋붕긋 솟은 산봉우리들이 조화를 이루고, 호수 가운데에는 커다란 섬도 하나 있다.

맥리호스트레일 네 개 백사장 중 가장 규모가 큰 타이완(大灣)해변. 샤프피크와 퉁완산에 감싸인 해변은 앞으로 남중국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산길을 벗어나 사이완빌리지(西灣村)에 도착하니 대여섯 가구를 넘지 않을 민가가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곧바로 해변으로 나아간다. 사이완은 육지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만(灣)을 이루고 있고, 아담한 크기의 백사장은 산줄기에 감싸여있다.

이제까지는 산길을 따라 왔다면 지금부터는 한동안 해변길을 따라 걷게 된다. 사이완해변은 잠시 바위지대를 지나 다시 모래해변을 만난다. 민가 한 채 없는 고운 백사장은 천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바다 정면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등대역할을 한다. 나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평화로운 여유’를 누린다.

모래해변을 지나 해변 산길을 걸으면서도 두 개의 백사장으로 이뤄진 사이완해변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느라 자꾸만 뒤돌아본다. 풍경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볼 때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샤프피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하지만 뒤로 펼쳐지는 풍경이 흘리는 땀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작은 언덕을 넘으니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은 샤프피크(Sharp Peak)가 고개를 내밀더니 천하절경을 이룬 풍경화가 펼쳐진다. 육지 속으로 파고든 두 개의 만(灣), 함틴완(鹹田灣)과 타이완(大灣)이 에메랄드빛을 띠고, 육지에서는 샤프피크를 정점으로 사이쿵반도 끝자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움은 서로 대비되는 모양과 색상이 어울렸을 때 극대화된다. 날카롭게 솟은 모양이 알프스 마테호른을 닮은 샤프피크와 수평을 이룬 바다가 어울리고, 바다는 낮은 산줄기를 가운데 두고 U자형으로 파고든 두 개의 만이 곡선을 그린다.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은빛 모래와 색상의 대비를 이루고, 파도는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 바다색에 변화를 준다. 오늘은 하늘도 푸르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채색효과까지 높여준다.

산과 바다가 만든 절경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데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함틴해변으로 내려서니 결 고운 모래가 한없이 부드럽다. 모래밭을 걸을 때는 파도가 조용히 노래를 불러준다. 한여름인데도 넓은 백사장에 해수욕하는 사람 한 명 없다. 자동차가 들어올 도로도 없고, 배가 정박할 선착장도 없으니 몇 시간 발품 팔지 않으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숨어있는 홍콩의 보물이다.

함틴해변은 사이쿵반도의 동맥을 이루고 있는 사이완산과 샤프피크, 퉁완산이 감싸고 있어 요람 속 아기처럼 포근하다. 샤프피크는 홍콩 말로 ‘염사첨’인데, 비단뱀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샤프피크로 오르면서 본 함틴해변, 타이완해변과 타이롱완(大浪灣)을 이루고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붕긋붕긋 솟은 산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절경이다.
함틴에서 둔덕을 넘으니 오늘 만난 모래해변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타이완(大灣)해변이 또 다시 펼쳐진다. 샤프피크와 퉁완산에 감싸인 해변은 앞으로 남중국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모래 위를 걸으며 발자국을 내보지만 파도가 밀려와 금방 지워버린다. 인생사도 그러리라…. 그러니 자신을 드러내려고 억지 부릴 필요도 없고, 내가 남들보다 내놓을게 없다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나는 타이완해변 모래사장을 걸으며 무위(無爲)를 생각한다.

우리는 모래해변을 걷고 나서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한다. 샤프피크로 오르면서 본 함틴해변, 타이완해변과 타이롱완(大浪灣)을 이루고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붕긋붕긋 솟은 산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절경이다. 산봉우리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바다로 스며든다. 산이 근엄한 아버지 같다면 바다는 무한사랑 어머니 같은 존재다.

숨을 헉헉거리며 가파른 길을 올라 샤프피크 정상에 도착한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사이쿵반도 북쪽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너머로 광동성 선전시의 산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이롱아우로 내려가는 길의 경사도 만만치 않다. 급경사길을 지나 완만한 산허리를 돌아가니 타이롱아우 고갯마루다. 함틴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올랐다면 30분이면 될 것을, 우리는 3시간 가까이 험한 산길을 걸었던 것이다. 대신 천하절경을 눈이 아프도록 볼 수 있었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오솔길을 걷는 기분으로 걷는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바닷가 마을 체켕(赤徑)이다. 체켕부두에 도착하니 멀리서 배 한 척이 다가온다. 갑판 위에 오르니 갯바람이 시원하다. 가파르게 솟은 샤프피크가 손을 흔들어준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6시간 동안 만났던 풍경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여행쪽지

▶홍콩 제25대 총독 맥리호스경의 이름을 딴 맥리호스트레일은 100㎞ 거리에 10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10개 구간 중 제2코스가 가장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맥리호스트레일 2코스는 공식 시작점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접근이 용이한 서만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샤프피크 코스를 선택한다면 서만정에서 시작해야 여유가 있다.
▶코스 : 서만정(西灣亭)→서만촌(西灣村)→함틴완(鹹田灣)→타이완(大灣)→샤프피크→타이롱아우→체켕(赤徑)부두(13.5㎞/6시간 소요)
▶함틴완(鹹田灣)에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이 하나 있다. 가격도 홍콩시내에 비해 저렴하다. 사이쿵 부두에는 살아있는 해산물로 직접 요리한 음식을 하는 식당들이 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들도 사이쿵 해물요리를 먹기 위해 일부러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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