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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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제주올레 9코스
월라봉 산길로 다가오는 아기자기한 풍경들

  • 입력날짜 : 2020. 08.04. 17:14
제주올레 9코스를 걷고 있으면 철모를 엎어놓은 것 같은 산방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산줄기는 넓은 평지로 낮아졌다가 송악산을 솟구친 후 바다로 빠져든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전까지도 그칠 줄 모른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오후에는 비가 갠단다. 이른 점심 후 대평포구로 향한다. 대평포구는 제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외부인의 출입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중문관광단지에서 가깝지만 주도로에서 빠져있고, 그것도 군산과 월라봉이 가리고 있어 외부인들이 잘 모른다. 대평리의 옛 이름은 ‘난드르’다. 난드르는 평평하고 긴 들판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마을은 군산과 월라봉에 감싸여 아늑하다. 포구로 통하는 넓은 마을길의 검은 돌담이 정겹다. 작고 한적한 마을 대평리도 요즘 들어 달라지고 있다. 해변에 운치 있는 카페가 문을 열고,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시설이 들어섰으며, 곳곳에 식당들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길을 지나 대평포구에 도착하니 제주올레 9코스를 알리는 간세가 기다리고 있다.

비는 이미 그쳐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포구에는 작은 배들이 정박돼 있고, 포구 옆에는 절벽을 이룬 박수기정이 병풍을 둘러친 듯 펼쳐져 있다.

‘박수기정’은 바닷가에 우뚝 솟은 130m 높이의 샘물이 있는 절벽이다. ‘박수’는 바가지로 떠 마시는 샘물이란 뜻이고, ‘기정’은 가파르게 솟은 절벽을 뜻한다.
대평포구 근처의 박수기정. ‘박수기정’은 바닷가에 우뚝 솟은 130m 높이의 샘물이 있는 절벽으로, 여러 번의 화산폭발로 생긴 지질백화점 같은 곳이다.

박수기정은 여러 번의 화산폭발로 생긴 지질백화점 같은 곳이다. 수성화산인 응회암이 기반을 이루고, 그 위로 현무암 조면암 등 여러 가지 화산암이 생성됐다.

박수기정 아래 바위에서 사철 끊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나는데, 물이 나오는 곳이 바가지처럼 생겨 바가지로 떠서 마신다는 뜻으로 ‘박수물’이라 부른다.

대평리와 박수기정에 얽힌 전설을 떠올린다.

옛날에 용왕의 아들이 대평리에 살았다. 용왕의 아들은 이 마을의 학식 높은 선비에게 글을 배웠는데, 서당 근처에 창고내라는 냇물이 밤낮없이 시끄럽게 흘러 공부에 방해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 3년 동안 글공부를 마친 용왕의 아들이 스승에게 소원 하나를 말하라고 했더니, 냇물의 물소리가 공부에 방해되니 없애달라고 했다. 이에 아들은 이곳에 박수기정을 만들어 방음벽을 설치했고, 동쪽으로는 군산을 만들어주고 떠났는데, 그 뒤로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박수기정은 대평리와 대평포구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가파른 절벽을 이룬 박수기정 남쪽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남서쪽 바다에서는 형제섬과 송악산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대평포구와 박수기정 사이에서는 완만하게 뻗어나간 검은 바위들이 완충역할을 해준다.

바다를 등지고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을 ‘몰질’이라고 하는데, 몰질은 대평포구에서 박수기정 상부로 오르는 돌길이다.

‘몰’이란 말의 제주도 방언이고 ‘질’이란 길을 뜻하니, ‘몰질’은 ‘말 길’이라는 뜻이다. 근처 목장에서 기른 말들이 이 몰질을 통해 대평포구까지 이동해 원나라로 실려 갔다고 한다. 몰질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평지에 가까운 밭이 나온다. 평평한 밭길을 걷다보니 아래쪽으로 해발 130m에 달하는 박수기정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밭가로는 소나무들이 있어 박수기정 위 밭길을 ‘한밭소낭길’이라 부른다.

‘낭’은 나무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밭소낭길은 큰밭소나무길이라는 뜻이다.

한밭소낭길에서는 사방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까운 곳에서 군산오름이 대평리의 마을과 들판을 감싸주고, 푸른 들판과 희고 붉은 건물로 이뤄진 대평리 마을은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에 감싸여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장쾌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한밭소낭길에서 본 대평리. 군산오름이 마을과 들판을 감싸주고, 푸른 들판과 희고 붉은 건물로 이뤄진 대평리 마을은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에 감싸여 있다.

지금은 밭으로만 이용되지만 이곳에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20여 가구가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한밭소낭길은 ‘볼레낭길’로 연결된다.

‘볼레낭’은 제주도 말로 보리수나무를 뜻한다.

볼레낭길로 접어들자 화순포구 화력발전소가 지척이다.

화력발전소 뒤로 철모를 엎어놓은 것 같은 산방산이 우뚝 서 있다. 산방산은 대정읍의 넓은 평지로 낮아졌다가 송악산을 솟구친 후 바다로 빠져든다. 송악산 앞바다에서는 작은 형제섬이 다정한 형제처럼 마주보고 있다.

길은 월라봉으로 향하면서 오르막이 계속된다. 잠시 오름을 올랐다가 밭길이나 마을길을 걷는 제주올레의 다른 코스에 비해 9코스는 대부분의 길이 산길로 이뤄져 있다.

산길이라 해도 월라봉 높이가 201m에 불과해 그리 힘들지는 않다. 숲길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준다.

월라봉으로 오르다가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무더기를 만난다.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통신시설로, 산방산 아래에 있는 산방연대와 교신했다.

월라봉 9부 능선을 돌아갈 때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산방산 앞쪽에는 9코스 종점인 화순금모래해변과 화순리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송악산에서 멀지않은 바다에서 가파도와 마라도가 낮고 겸손하게 다가온다. 산방산과 송악산 주변바다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송악산과 가파도, 마라도가 작은 형제섬과 함께 제주도 최남단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진지동굴도 만난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제는 제주도 해안 곳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제주도 주민들을 동원해 인공적으로 동굴을 만들었다.

월라봉 북사면에 만들어진 7개의 동굴은 화순항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폭 4m, 높이 4m에 이르는 진지동굴은 길이가 80m에 달한다. 동굴 안에서는 산방산과 화순해변이 바라보인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사죄할 줄 모르는 일본의 행태가 비열하다.

월라봉 북사면을 내려가니 소나 말을 키우는 초지들이 많다. 초지에는 말이나 소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미로형 출입구와 철조망을 쳐 놓았다. 초지 아래쪽으로 물소리가 들린다. 안덕계곡이다. 안덕계곡은 제주의 계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평평한 암반 바닥에서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이 멋스런 운치를 자아낸다. 3백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난대성 원시림은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화력발전소 앞을 지나 화순리 마을로 들어서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을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아가니 화순항과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이 기다리고 있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옆에는 산방산이 불쑥 솟아 있다. 산방산을 뒤덮고 있는 비구름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여행쪽지
▶제주올레 9코스는 박수기정 상부와 월라봉 숲길을 따라 걷는 길로 아름다운 제주도 남서쪽 해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짧은 코스다.
▶코스 : 대평포구→박수기정 상부→볼레낭길→월라봉→진지동굴→진모르동산→황개천→화순금모래해수욕장
▶거리/소요시간 : 7.5㎞/3시간 소요
▶화순리와 산방산 사이에 있는 만복밀면(064-794-0013)은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현지인들에게 맛집으로 소문난 이 식당에서는 밀면, 고기국수, 돼지국밥, 수육, 찐만두 등을 값싸게 먹을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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