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말 미국 인터넷 신문 ‘허핑턴 포스트’에 발행인인 아리아나 허핑턴의 칼럼이 하나 실렸다. 은행의 ‘계좌 옮기기’를 실행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전 세계적인 경제혼란의 주역인 금융이 반성은 커녕 구제금융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경영진은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기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는 것을 그냥 쳐다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글의 시작이었다. 그러면서 불량제품을 구매하지 않듯, 불량한 은행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을 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고객의 예금으로 흥청망청 도박판을 벌이고는 사고가 나자 오히려 국가와 국민을 협박하는 부도덕한 은행을 단죄하기 위해서는 은행계좌를 빼고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좌를 바꾸는 것이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약간의 번거로움만 감수하면 되는 일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허핑턴은 거대한 은행의 사악함에 분노하면서도 침만 뱉고 돌아설 것이 아니라, 금융소비자인 시민들이 금융사의 잘못된 판을 바꾸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새로운 금융혁신 운동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 ‘계좌 옮기기’ 운동은 2011년 11월5일을 ‘계좌 바꾸는 날’로 정하며 급속하게 시민운동으로 확산되었다. 2012년 말까지 미국인 1천여만명이 월가 거대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하였다. 또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도 이 운동이 확산되어 계좌의 이동이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루어져 오만한 은행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처럼 금융사의 독선에 실망하고 분노한 서구권 금융소비자들이 점차적으로 연대하고 힘을 모아 제도권 금융사의 각성을 촉구하며 실력행사를 감행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들은 아직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이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절실하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lMF사태 이후 우리나라 금융사들은 주주이익을 우선하는 경영으로 이익은 극대화하였지만, 정작 소비자들과 실물경제를 위한 서비스는 도외시하였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경제적 합리성과 사회적 책임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그 소임을 다하는 업종이라 할 수 있다. 금융업종은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달리 그 설립이 국가로부터 특별히 허가받아야 하므로 진입장벽이 두터워 과점적 이익을 보호 받고 있다. 따라서 그 사회적 책임이 어느 산업보다도 각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이란 금융사가 전통적인 경영 목표인 이윤추구를 위한 제반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주와 근로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등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의 의견과 회사에 대한 평가를 경영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 반영하여, 회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평판을 만들어 내고 확산시키는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금융에는 지역문제, 사회문제 그리고 빈곤문제까지도 해결할 힘이 있다. 다만 금융 스스로가 그 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금융사가 의지를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서민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는 따뜻한 금융이 되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산업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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