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에서 귀양생활을 하고 있던 정약용선생은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이곳 백운동별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름다운 바위가 불쑥불쑥 솟아있는 월출산은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있다. 산의 북쪽권역이 영암군이고, 남쪽권역은 강진군이다. 월출산 북쪽 영암 땅은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지만, 월출산 남쪽 강진군 성전면은 높지 않은 산과 넓지 않은 들이 어울려 있다. 영암 쪽에서 본 월출산은 우람하고 강렬한 기(氣)가 느껴지고, 강진 쪽에서 본 월출산은 아기자기하다.

오늘은 월출산 남쪽자락을 따라 걸을 참이다. 강진군 성전면에 속한 월출산 남쪽자락에는 유난히 문화유적이 많다. 아름다운 월출산을 바라보며 월출산 남쪽자락을 따라 걸으며 오래된 문화유적을 만나는 길이 있다. ‘강진 월출산 달빛길’이다.

‘강진 월출산 달빛길’이 시작되는 무위사에 도착했다. ‘월출산 무위사’라 쓰인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무위사로 들어가는 길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일주문을 지나 한 계단 오르면 사천왕문을 지나게 되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2층 누각형태의 보제루 밑을 통과하게 된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었다. 넓은 마당에 올라서니 정면에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이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겹처마에 주심포 건물이다.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무위사 극락보전은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한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겹처마에 주심포 건물이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312호)이 모셔져 있고, 뒤편 벽에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져 있다.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아미타삼존불벽화(국보 제313호)는 앞쪽의 아미타삼존불상과 마찬가지로 아미타불을 가운데 두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했다. 아미타삼존불 벽화 뒷면에는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연잎을 타고 서 있는 관음보살이 그려진 수월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있다. 이렇듯 무위사 극락보전은 건물과 불상, 벽화 등 조선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312호)이 모셔져 있고, 뒤편 벽에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져 있다.

극락보전 앞쪽 마당에는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76호)이 서 있고, 한 계단 위 극락보전 옆에는 선각대사 부도비(보물 제507호)가 당당하게 서 있다. 무위사는 극락보전과 삼층석탑, 진각대사 부도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이 근래에 다시 지은 것이라 고색창연한 분위기는 다소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위사는 소담하고 짜임새가 있다.

무위사 일주문을 나와 백운동정원으로 향한다.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월출산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안운마을 골목길로 내려선다.

안운마을 입구를 지나자 ‘백운동원림’이라 쓰인 안내판이 백운동정원으로 안내한다. 다산초당에서 귀양생활을 하고 있던 정약용선생은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이곳 백운동별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백운동의 아름다움에 반한 다산선생은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도록 하고, 본인은 백운동 원림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다. 백운동도와 시문을 엮어 책으로 만든 것이 ‘백운첩’이다.

백운동원림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폐허가 돼 원형을 잃어버렸으나 ‘백운첩’에 있는 ‘백운동도’를 근거로 유서 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었다. 백운동원림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진다. 조선중기 선비들의 은거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백운동원림으로 가는 길은 짧지만 돌담과 동백 숲이 운치 있다. 마침 동백꽃이 붉게 피어 봄소식을 전한다.

백운동정원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1627-1701)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꾸민 원림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구성이 우리 전통 원림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솟을대문을 넘어 백운동정원으로 들어서니 초가 두 채가 길손을 맞이한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백운동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초당 앞을 돌아가게 만든 제5경 유상곡수(流觴曲水)다. 담양 소쇄원은 자연계곡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건물을 앉혔지만, 백운동원림에서는 바로 옆 백운동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아기자기한 물길을 만들었다. 유상곡수에는 물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초당 옆과 앞에 사각형의 작은 연못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유상곡수 옆 초당 위쪽에는 ‘산허리에 있는 꾸밈없고 작은 방’이라는 뜻을 가진 제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취미선방 뒤편에는 집주인이 기거했던 자이당(自怡堂)이라는 편액이 붙은 기와집이 복원돼 있다. 백운동원림 담장 밖 정면 언덕에 작은 사각정자가 우뚝 서있다. 소박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제11경 정선대(停仙臺)가 기다리고 있다. 정선대에서는 백운동정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정선대에서 바라본 월출산 또한 가경이다. 구정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옥판봉이 솟아있는데, 원뿔처럼 솟아오른 옥판봉 바위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옥판봉은 백운동원림 제1경이다.

담장 밖 언덕위에 세워진 정선대에서는 백운동 정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정선대에서 바라본 월출산 또한 가경이다.

백운동정원을 나와 왕대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운동전시관으로 가는 길과 월출산녹차밭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백운동원림에서 월출산다원으로 가는 길은 짧지만 계속 걷고 싶은 길이다. 그윽한 숲길을 지나자 드넓은 녹차밭이 펼쳐진다. 수려한 월출산 남쪽자락에 자리한 녹차밭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월출산 남쪽 산자락 완경사에 조성된 월출산다원은 보성 봇재 산비탈 급경사지에 조성된 녹차밭과 대비가 된다.

금릉경포대계곡 하류에 자리한 월남리에는 월남사라고 하는 큰 절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고 전하는 월남사지에는 삼층석탑(보물 제298호)과 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만 남아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백제양식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아 늘씬하고 우아하다. 월남사지는 병풍처럼 펼쳐지는 월출산의 빼어난 봉우리들이 가장 아름답고 편안하게 배경이 되어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은 백제양식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아 늘씬하고 우아하다.

월남사지를 나와서 월남리를 지나자 예쁜 한옥마을이 다가온다. 2007년부터 3년간 전원마을 조성사업으로 만들어진 달빛한옥마을이다. 한옥의 지붕은 모두 팔작지붕을 해 월출산 바위들과 어울리게 했다. 마을 아래쪽 언덕에 세워진 달빛전망대에서 바라본 달빛한옥마을과 월출산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아름다운 월출산 품에 푹 담겨있는 모습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2007년부터 3년간 전원마을 조성사업으로 만들어진 달빛한옥마을.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강진 월출산 달빛길’은 아름다운 월출산 남쪽 자락을 따라 걷는 길이다. 천년고찰 무위사와 호남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백운동원림을 만나고, 월출산과 어울린 녹차밭을 지나 월남사지까지 유서 깊은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다.
※코스 : 무위사→안운마을→백운동정원→월출산다원→월남사지→달빛한옥마을
※거리, 소요시간 : 5㎞, 1시간 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무위사주차장(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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