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순

시를 읽는 시간
서재의 침묵을 깨고
문 사이로 들려오는 음성
엄마 뽀뽀
아빠 뽀뽀
봄바람처럼 감겨드는 딸의 목소리
돌을 앞둔 손녀에게
그림책을 보며 생활의 말을 들려준다
그래,
뿌리의 간절함이다
햇살의 따뜻함을
나무의 견딤을
꽃의 향기로움을
대지 위의 풀꽃 같은 언어들을 숨 쉬며
어버이 샘물 같은 정성을 마시며…
여물고 무르익어
탐진 열매 튼실한 씨앗 되어야지.
(시집 ‘겨울 그 뒤’, 한림, 2015)

[시의 눈]

정적인 공간 거실이 돌연 동적인 공간으로 변주된다. 쾌적하고 안정된 공간, 시를 음미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시를 읽던 시적 화자의 내면에 물결이 인다. 고요와 침묵을 깨고 문득 새 환경을 맞는다. 딸과 손녀가 찾아와 인문학적 상상력은 금세 생활의 미학으로 모드를 전환한다. 그것은 봄바람으로, 뿌리의 간절함으로, 나무의 견딤으로, 꽃의 향기로움으로, 풀꽃 같은 언어들로 치환돼 어린 생명에 정성의 샘물을 떠먹이는 어버이의 애틋함으로 발전된다.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행복의 척도를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인생의 즐거움은 따지고 보면 수두룩하다. 자신의 즐거움, 가정의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마음의 소통과 교류, 시와 노래, 예술, 사색, 우정, 대화, 독서 등. ‘아름다운 봄날 소풍’으로 인생을 노래한 시도 있다. 손녀가 나타남으로써 누리는 즐거움, 가족 사랑의 원초적 즐거움이다. 시 읽기의 재미와 또 다른 혈육과의 물리적 접촉으로 비롯된 물큰한 즐거움이다. 듣기 좋은 소리 세 가지가 있다. 책 읽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 방망이 소리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생명의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글픔이다. 출산파업. 그것은 인구 소멸위기를 촉발한다. 문제의식도 곁들인 시다.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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