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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종합버스터미널 앞 정류장. 번잡한 도심의 한복판에서 함평교통 농어촌버스 500번을 기다린다. 함평 농어촌버스 500번이라는 하나의 번호 안에는 광주와 함평 터미널을 오가는 노선부터 월계리행, 대포리를 거치는 노선, 상무대나 영광까지 넘어가는 계통 등 무수히 많은 목적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늘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갈래의 500번 중에서도 기점인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용천사까지 향하는 ‘광주-용천사’행, 즉 전면에 ‘용천사행’을 붙인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노선에 오르면 중간에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단 한 번에 함평 용천사까지 곧장 닿을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차문을 열어준 버스에 오르면, 도시의 거친 소란은 닫히는 유리창 너머로 완벽히 차단된다. 기아자동차를 지나 화정현대아파트, 쌍촌역과 서광주세무서를 거쳐 운천역으로 향하는 초반 노선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광주의 도심 풍경이다. 상무지구 입구와 상무역, 김대중컨벤션센터(마륵)역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창밖은 거대한 상업용 건물과 높게 솟은 아파트 단지들이 빽빽하게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월암과 서창 입구를 지나 장암마을, 공항역, 송정파출소에 다다르며 팽팽했던 도시의 밀도는 서서히 헐거워지기 시작한다. 드높았던 콘크리트 빌딩들은 썰물처럼 자취를 감추고 좌우로 탁 트인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나타난다. 서봉마을과 운평, 송산, 삼도초교, 삼도삼거리, 외치를 지나며 차창 밖의 질서는 본격적으로 느릿한 농촌의 시간 속으로 편입된다. 덜컹이는 차창 너머로 깊어가는 가을빛을 머금은 평야가 일렁이고, 켜켜이 쌓인 지역의 시간들이 스크린 속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대략 1시간10여분의 유영 끝에 묵직한 엔진 소리가 잦아들면, 마침내 500번 광주-용천사 직행편의 종점에 닿게 된다. 종점에 내렸다고 해서 복잡하게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현재 위치를 가늠할 필요는 없다. 정류장은 전남광주 함평군 용천사길 209에 위치한 용천사, 그리고 해보면 광암리에 자리한 꽃무릇공원 초입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도보 동선이 짧고 직관적이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짙은 숲을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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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은 시각적인 압도감에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의 용천사 일대는 그야말로 거대한 붉은 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숲 전체가 타오르듯 만개한 붉은 꽃무릇은 생태적으로 무척이나 독특하고 신비로운 식물이다. 늦여름의 열기가 식고 서늘해질 즈음, 땅속 구근에서 일제히 굵고 짙은 푸른색 꽃대가 솟아오르고 그 끝에서 붉은 꽃송이가 화려한 폭죽처럼 터진다. 잎이 완전히 스러진 후에야 비로소 꽃이 피어나고, 꽃이 붉은 생명을 다해 떨어지고 난 후에야 푸른 잎이 돋아난다. 단 한 번도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영원히 엇갈리는 이 가혹한 운명 탓에, 사람들은 이를 애절한 상사화의 일종이라 부르며 안타까워하지만, 정확한 식물학적 명칭은 ‘석산’이다.
사찰 주변에 이토록 매혹적인 붉은 꽃이 무리 지어 피어나는 데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옛 승려들은 구근에 포함된 맹독성 방부 성분을 찧어 발라 사찰의 단청이나 불화가 좀먹고 부패하는 것을 막았다.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지극히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목적으로 심어졌던 식물이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스스로 번식해 지금의 거대한 군락을 이루었다. 옛사람들의 치열했던 삶의 지혜가 훗날 우리의 눈을 멀게 할 만큼 압도적인 미학으로 완성된 셈이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발밑에서 끝없이 일렁이는 붉은 물결에 아득한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백제 침류왕 시절에 창건되어 대웅전 앞뜰의 샘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는 천년 고찰 용천사. 기나긴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낡은 전각의 빛바랜 단청과 그 주변을 빈틈없이 에워싼 붉은 꽃무릇 무리는,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 흩뿌려진 강렬한 원색 물감처럼 비현실적이고 도발적인 대비를 이룬다.
압도적인 붉은색이 뿜어내는 마력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킨다. 붉은 꽃밭을 배경으로 서로의 찬란한 청춘을 사진 프레임 안에 다정히 담아내는 젊은 연인들의 얼굴에는 티 없는 웃음이 가득하다. 숲의 짙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한껏 들뜬 아이들의 손을 이끄는 가족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이제는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어내는 중년의 부부들은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사찰의 고요한 정취를 깊이 음미한다. 타지역에서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 역시 숲이 뿜어내는 마력적인 붉은빛에 홀린 듯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완연한 가을의 숲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린, 거대하고 붉은 위로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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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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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목) 1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