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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아무리 달려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 제자리 걸음의 나라가 나온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배 이상 빨리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은 이를 ‘붉은 여왕의 법칙’이라 부른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경쟁에서는 누구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최초·최고·최대’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지역 관광의 현실이 이와 같다. 더 높은 전망대와 더 긴 출렁다리를 경쟁적으로 세울수록 고유의 매력은 사라지고 무의미한 소모전만 남게 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장소 브랜딩은 그 출발선을 지역 고유의 유전자에서 찾는다. 특정 장소의 역사와 경관, 그리고 사람을 매개로 형성된 대체 불가능한 정체성만이 획일화된 경쟁을 탈피하여 독자적인 장소성을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의 반월도와 박지도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구 130여 명의 소외된 섬이었다. 그러나 마을 지붕과 다리, 골목길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주민 100여 명이 직접 고유의 콘텐츠를 가꾸어 나가자 섬의 운명이 바뀌었다. 2021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이 섬을 선정했다. 현재 퍼플섬으로 불리우는 이곳에는 매년 40만 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체르마트는 화석연료 차량의 진입을 제한하면서까지 ‘마터호른과 알피니즘’이라는 독자적 정체성을 사수하여 세계적인 산악 성지로 자리 잡았고, 일본 나오시마는 산업폐기물 매립지라는 오명을 예술로 극복하며 글로벌 미술 애호가들을 유인하고 있다. 세 지역의 공통점은 ‘유일한 경험’으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여행 수요도 ‘나만의 경험’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부킹닷컴’이 2025년 국내 예약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2026년 주목받는 여행지 10곳’에는 부안과 태안, 삼척, 부여 등의 중소 도시가 이름을 올렸다. 예약 상위 1천 개 지역 가운데 한 해 전보다 예약이 가장 가파르게 늘어난 곳들이다. 남들이 다 아는 명소가 아니라 나만의 장소, 그곳이 아니면 안 되는 경험을 찾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 변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여행의 목적이 관람에서 경험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신호다.
물론 유일함 역시 복제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안 퍼플섬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자 무작정 마을에 색부터 칠하는 지역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벤치마킹’이라는 명분 아래 손쉽게 베끼려는 오랜 관행이다. 하지만 색은 흉내 낼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주민의 참여와 서사, 축적된 시간마저 복제할 수는 없다. 겉모습만 모방한 곳에 첫 방문은 있어도 두 번째 방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지역 관광의 핵심 과제는 지역 스스로 ‘자기만의 경주’를 설계하는 일이다. 첫째, 지역 고유 자원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 경관과 역사, 산업과 사람까지 그 지역에만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재해석하는 작업이 모든 기획에 앞서야 한다. 둘째, 고유성 심사의 도입이다. 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당 계획이 타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다. 만약 대체 가능하다면 지역의 자원과 사람, 이야기에 깊이 뿌리내릴 때까지 계획을 다시 검토하는 원칙이 요구된다. 셋째, 성과지표의 전환이다. 누적방문객 수라는 양적 지표에서 벗어나 재방문 의향과 체류시간, 추천 의향처럼 경험의 깊이를 재는 질적 지표가 정책 평가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숫자가 바뀌면 행정의 질문도 달라진다.
지역 관광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러왔느냐가 아니라 방문객이 다시 올 이유를 품고 돌아갔느냐에 달려 있다.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곳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깊게 쌓아가는 곳에 재방문은 이어진다. 지역이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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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목) 1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