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을 지나는데 까만 잡초매트 안에서 아스라이 외마디 비명 들린다 잠시 서서 귀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잡초매트 살짝 들어 올리니 곧 숨넘어갈 것 같은 잡초들 누렇게 뜬 얼굴 오무락거리며 후흡후흡후흡 공기 들이마시느라 정신없다. ▲ 명지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 ▲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2022-07-11 19:12

“선생님 집에 가서 읽어 봐.” 민이 가방 속에 편지를 넣어주면서 말했다. 민이는 등교하면 맨 먼저 나의 표정을 살핀다. 고개를 돌리면 내 얼굴 쪽으로 와서는 유심히 본다. 어찌 알았을까. 오늘은 아이가 내 허리 아픈 것을 알아차렸다. 아프면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있으라면서 쿠션을 갖다준다. 그리고 아플 때는…2022-07-11 19:12

늦가을 빈 들녘 박주가리가 흔들거리며 빈껍데기만 달그락 거리네 속살에 감추었던 씨방이 ‘툭’ 터지면 씨앗들이 날개 달고 저 멀리 여행을 떠나네 품안 떠난 자식들 걱정에 다 내어 준 어머니의 빈 가슴처럼 박주가리 씨방만 남아있네 ▲ ASIA 서석문학 이사, 등단(2016) ▲ 광주시인협회 이사, 충장…2022-06-28 19:07

수 세기를 거치면서 말없이 잇대어온 내력 역사를 만들고 삶을 이어오는 원동력이다 적응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엄지는 무한 반복 진화를 계속했다 작은 변화가 큰 물결을 이루고 계속되는 우연한 흐름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많은 엄지는 세대를 지나 영역을 넓혀나간다 머리 박고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시간 제약도…2022-06-28 19:07

보고 싶은 친구 이름. 그리움의 연못에 밤 내 담금질하다 새벽에 건져내어 하늘 저 편에 매달아 두었다. 더욱 그리워하라고 아주 먼 곳에. ▲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 1983년 3인 시집 ‘바람. 하늘. 산’ ▲ 2021년 동시집 ‘줄은 기러기 줄’ - 평 설 - 이문석 님의 동시…2022-06-28 19:07

옥이는 홍이와 전희를 태우고 남해바다 보성 득량면 비봉리, 비봉공룡알화석지로 향했다. 단풍의 계절 10월 마지막 토요일, 금년엔 유난히 노란색과 붉은색 단풍이 고왔다. 오색찬란했다. “와~, 저기 좀 봐!” 비봉공룡공원이 잘 조성되어있었다. 옛날에 아들, Andy가 어렸을 때, 그토록 좋아했던, 그래서 지하 가족…2022-06-28 19:07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일상을 뒤집어 놓더니 사람 간의 거리두기로 사람살이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웃 간의 발길도 멈추더니 하늘길도 멎었다. 경제는 멈춘 것도 모자라 뒷걸음치고, 언제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행도, 모임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행동반경이 좁아지니 속까지 답답해 소화가 안 되…2022-06-13 22:33

늦은 밤 어둠에 안긴 세상은 까맣게 비어있다 이른 아침, 이슬 한 방울에 마음을 씻는 풀잎들이 미소처럼 세상은 환하게 비어있다 자잘한 이야기로 말을 건네는 이웃들과 풋내 나는 과일처럼 싱그럽게 속살거리며 시작되는 하루에 깊은 그늘은 사라졌다 비움과 채워짐 그 속에 내가 있다 팅 빈 고요…2022-06-13 22:33

동강 난 가슴에도 강은 흐른다, 띄워라 연락선, 오월의 햇살로. -평 설- 설상환 님의 시 ‘반섬의 꿈’에서의 시적 화자는 동강 난 가슴에 눈길을 두고 있다. 반섬은 한 섬의 반을 뜻한다. 그 반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단으로 나뉘어진 남과 북, 오해가 겹쳐 끝내 헤어진 반쪽의 사랑, 꿈을 향해 나아가다…2022-06-13 22:33

처마 끝에 대롱대롱 물고기 자리 깨어 있으라 간절한 마음 인사를 한다 지난 시간이 간 자리 오늘을 산다 -평 설- 김민경 님의 시 ‘참선’에서의 시적 화자는 참선의 세계를 그려놓고 있다. 시적 화자는 수행자가 되어 참선을 하고 있다. 밤낮없이 처마 끝에서 ‘물고기 자리/ 깨어 있’다. 그만큼 수…2022-06-13 22:33

창문을 열었다 남쪽으로 향한 눈길이 눈부시다 간밤에 숨겼던 깃털을 세웠을까 잠든 시간의 길이만큼 열어놓고서 수줍게 밀고 들어오는 그녀가 곱게 빚은 대봉의 얼굴을 쳐다본다 삼다도 건너온 황금빛 귤나무는 바람의 노래를 부르며 손짓하는데 철들지 못한 한여름 꽃들이 테라스 여기저기 곱게…2022-05-30 19:25

노고단, 성삼재에서 뱀사골로 내려오는 길목.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 모두다 돈과 벼슬 도시가 좋다고 할 때. 지리산의 숲과, 산그늘이 좋아서 세상을 뒷걸음쳐온 사람들 계곡물처럼 살고 싶었던 이들이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저 바위처럼 뿌리를 내리며 돌탑을 쌓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2022-05-30 19:25

아버지는 보았다 피 끓는 정의로운 땅 광주光州 주먹밥 나누어 먹으며 불의에 맞서 함께하던 뜨거운 함성을 깃발과 함성이 바람과 함께 피 흘리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자식들 생각에 피 끓는 광주光州 뜨거운 광장으로 달려가지 못함을 소주 한 병으로는 악몽을 쫓지 못하고 부끄러워 혼자…2022-05-30 19:25

아버지가 중국을 다녀오신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중국에 살고 계시는 고모님을 만나러 가신다고 벼르기만 하시더니 시절 인연이 도래하였는지 어느 날 가시게 되었노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 전화를 받고 가슴이 두 근 반 서 근 반하더니만 며칠 동안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이번 가시는 길…2022-05-30 19:25

현관 앞에 연등 하나 걸며 문득, 내 안에 절을 짓고 싶은 생각, 마음의 중심을 비우며 부처님 맞이할 절을 세운다 기뻐서 감사한 자 가난해서 힘든 자 병들어 고통스러운 자와 죽어가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방에 연등을 걸고 번뇌, 무지로 가득 찬 어둠을 비추려 마음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피어오르…2022-05-16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