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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계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한 계산의 학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자산으로 인정할 것인지, 수익은 언제 실현된 것으로 볼 것인지,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숫자에 반영할 것인지에는 언제나 인간의 판단이 개입된다.
그런 의미에서 회계는 경제적 현실을 숫자로 표현하는 기술인 동시에, 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AI의 확산은 이러한 회계의 철학적 성격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제 AI는 단순한 전표 입력이나 자료 정리를 넘어 이상거래 탐지, 부실위험 예측, 회계추정, 감사절차 지원 등 회계와 감사의 판단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회계업무를 얼마나 대신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AI가 제시한 숫자와 판단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이다.
회계의 본질은 결국 신뢰에 있다. 투자자와 채권자, 정부와 시장은 재무제표가 기업의 경제적 실질을 충실하게 보여준다는 믿음을 전제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렇다면 AI가 생성한 정보도 단지 계산의 정확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AI는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거나 판단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결과가 정교해 보이더라도 그 신뢰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AI 시대의 회계윤리는 ‘설명가능성’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회계에서는 거래가 발생하면 증빙과 분개 등 장부 기록을 거쳐 재무제표가 작성되는 과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AI 알고리즘이 회계판단에 개입하면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왜 도출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회계윤리는 단순히 “숫자가 정확한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숫자가 나왔는가”, “어떤 데이터와 판단기준이 사용되었는가”, “그 과정을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정확성에서 투명성과 이해가능성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이다. AI가 자산의 가치를 잘못 추정하거나 부채 등 부실위험을 과소평가하고, 그 결과가 재무제표나 감사의견에 영향을 미쳤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AI를 개발한 기업인지, 이를 도입한 경영진인지, 회계담당자인지, 혹은 외부감사인인지 책임의 경계는 이전보다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켜야 할 분명한 원칙이 있다. 판단을 AI에 맡길 수는 있어도 책임까지 AI에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AI는 판단을 지원하는 도구이지 도덕적 책임의 주체가 아니다. 결국 AI의 분석결과를 받아들이고, 이를 재무정보에 반영하며, 그 결과를 설명해야 하는 책임은 인간과 조직에 남는다. AI 시대의 회계윤리가 기술윤리를 넘어 책임윤리로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회계전문가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정확한 기록과 계산, 기준의 적용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AI가 제시한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경제적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의 판단을 무조건 따르는 것도, 반대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전문적인 태도라 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을 의심하고 근거를 확인하며 최종적으로 책임 있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회계윤리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 진실을 믿는가. 그리고 잘못된 판단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AI가 고도화될수록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가 회계의 계산을 대신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 그 판단의 결과에 책임지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AI 시대의 회계는 더욱 철학적이어야 하고, 더욱 윤리적이어야 한다.
좋은 회계란 정확한 숫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숫자가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까지가 회계의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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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09: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