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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합종은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강한 진나라에 맞서는 전략이었고, 연횡은 각 나라가 진과 개별적으로 손잡아 생존을 도모한 방식이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다.
최근 대한민국도 비슷한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충돌 속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위해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군사적·비군사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파병이나 군사 참여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반면 이란 측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군사작전에 가담한다면 전쟁 참여로 간주하고 ‘심각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맹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중동의 위험 속으로 성급히 들어가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주역(周易)은 세상을 고정된 선악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세(時勢)로 본다. 같은 행동도 때와 자리에 따라 길(吉)이 되기도 하고 흉(凶)이 되기도 한다. 강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언제나 안전한 것도 아니며, 중립을 지킨다고 언제나 화를 피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력의 크기보다 형세를 정확히 읽는 지혜다.
명리학(命理學)에서도 강한 기운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좋은 운이라 하지 않는다. 내 사주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지, 오히려 균형을 무너뜨리는지를 먼저 본다. 국가의 외교도 같다. 동맹은 중요하지만 국익보다 앞설 수 없고, 명분만 좇다가 국민의 생명과 경제를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생명선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선택은 단순히 미국과 이란 중 누구 편에 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 한미동맹, 중동 교역, 국민 안전을 함께 놓고 계산해야 한다.
역학(易學)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이다. 나라의 운명도 감정이 아니라 변통(變通)에서 갈린다. 진정한 외교란 강대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반대로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천하의 흐름을 읽되 마지막 기준은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이어야 한다. 격랑의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용맹보다 냉정한 판단이다.
강대국 사이에 놓인 나라는 힘보다 판단으로 살아남는다. 이것이 옛 합종연횡이 오늘 대한민국에 다시 던지는 질문이다.
최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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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10: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