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풍이 불었다 어느 날 매서운 삭풍은 피멍들게 목울대 숨통을 쥐었다 낮 붉힌 *아나키스트의 발가벗은 오월의 배롱나무처럼 *아나키스트(anarchist) 무정부주의자로 러시아‘트라보로 나나르키아 아나키의 어원. 선장 없는 배의 주인들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이명란 약력 ▶시인, 낭송인, 화가, 문학전문…2020-05-11 20:01

빛바랜 주소록에 너는 없지만 먼 곳에서 잘 지내는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오월의 들불과 찬란한 슬픔사이 우리들의 한 소절 노래되어 너는 오래오래 있었구나 햇빛 비치는 길을 물어서 너의 둥근 얼굴과 단발머리와 장동의 학교, 문리대의 등나무와 사범대…2020-05-11 20:01

광주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많이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때 광주 시내의 가로수는 온통 은행나무로 도시가 은행나무숲으로 에워싸인 듯했다. 그 중에서도 옛 전남도청 주위에는 아름드리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나는 봄이면 연둣빛 이파리가 싱그럽게 피어나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도청 앞 은행나무 가로수…2020-05-11 20:01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은 5월을 가장 기다린다”는 아름다운 서신을 읽었다. 연초록 감잎들로 가슴 설레는 오월은 계절의 정점이다. 그런 오월이 광주사람에게는 더없는 슬픔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아픈 달이다. 그 때문인지 이번 작품들은 광주의 오월과 관련해 읽을 수 있었다. “오월의 들불과 찬란한 슬픔사이”에서 “한 소절 노래되어” 떠난 친구 ‘기순’을 회상하는 추모형식의 ‘먼 훗날에의 다짐’은 저 세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친구를 슬픔 가…2020-05-11 20:01

꽁꽁 언 땅을 톡 톡 톡 두드리며 “어서 일어나” 잠든 새싹을 조심조심 깨운다. 마른 나뭇가지에 줄 줄 줄 물을 주며 “어서 힘을 내” 여린 새움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이제, 풀 죽은 들판이 만세를 부르고 때 자국 낀 산이 세수하며 다가온다. 윤영훈 약력 ▶‘월간문학’에 동시 ‘창조문학’에 시 당…2020-04-20 18:10

미움도 권위도 욕심도 없이 흘러간다. 바위가 있으면 비켜 가고 깊은 곳이 있으면 채워 가며 낮은 곳으로만 흘러간다. 시냇가 조약돌 수천년 세월 속에서 밤낮으로 반질반질 매끄럽게 어루만져준다. 물 흐르듯 살아가자 덧없는 인생살이를 송윤채 약력 ▶‘문학공간’(2003) 시, ‘지구문학’ 수필…2020-04-20 18:10

허허벌판 황혼의 은발 풀어 이고 세찬 바람 모진 매질에 돌쟁이 어린애처럼 도리도리 고개 흔들며 뚝뚝 굵은 눈물 떨구는 억새. 정든 임 기다리다 청춘은 서리서리 노을빛 되고 겨울로 가는 문턱에 애달픈 그리움 쏟아 부어 햇살 품은 봄소식 재촉하니 살며시 피어나는 희망 한 조각. 김순금 약력 ▶‘…2020-04-20 18:10

사이는 서로 사귀는 정분을 뜻한다. 정분은 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이요. 시간과 공간과 관계를 섞어 다지고 볶아야만 나오는 친밀감이다. 사이는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은 움직인다. 사이는 ‘동안’이고 ‘틈’이고 ‘새’다. 둥근 원을 12 등분한 사이를 돌고 도는 게 시곗바늘이다. 바늘과 바늘 사이가 만드는 게…2020-04-20 18:10

억새를 두고 “하얀 장갑 낀 손으로 사람사람 부른다”는 문장을 접한 일이 있는데 김순금 시인의 ‘슬픈 억새 사랑’을 읽는다. 김 시인은 ‘황혼의 은발’이 돌쟁이 어린애처럼 도리도리 고개를 흔든다고 했다. 재미있는 관찰이다. 이 세월에 오기까지 ‘청춘은 서리서리 노을빛이 됐을 것이다. 억새가 피고 겨울이 되면 화자는 또다시 봄소식을 기다리고 있겠고. ‘물’을 노래한 시작품을 읽는다. 도덕경은 물을 두고 ‘상선약수’라 했는데 가장 좋은 것은 물 같아…2020-04-20 18:10

웅크린 잠에서 깬 상고대 여인들이 곧은 뼈 주상절리 이물없이 손도 짚고 흰머리 휘휘 날리며 무돌뫼에 오른다 그믐밤 건너, 건너 창에 스민 달빛 난장 닥나무 쪄서 우린 한지 몇 장 뜨는 새벽 한가슴 어머니 덕담 봉긋이 드러난다 한 번도 역적 자식 낳은 적 없는 골짝 배역의 땅이라니… 오명을 털어내며 불땀…2020-04-06 18:24

걸어온 자욱마다 파랗게 날이 선 시간들이 멈춰 서 있다 등을 돌리고 숨죽여 흐느끼는 숱한 그림자들이 모여 서 있다 그곳엔 어김없이 눈물과 한숨으로 엮은 시간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먼 먼 방황의 길목마다에 외로움으로 키가 하늘에 닿은 내 젊은날의 초상이 아름답다 홍회정 약력 ▶1993년 월간 ‘…2020-04-06 18:24

내가 홀로 있을 때 가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때론 달빛으로 흐르는 시냇물 혹은 바위틈에서 기어나오는 개미 그러다 문득 소스라쳐 달아나는 노루새끼 그러니까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가끔 귀에 들리기도 하고 때론 발에 밟히기도 하고 혹은 손가락 끝에 걸리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눈물샘에 고이기도 하는 것 …2020-04-06 18:24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1947-1998)는 전주에서 출생했다. 전주에는 최명희 문학관과 그녀의 묘소가 있지만, 정작 소설 ‘혼불’은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일대가 주 무대이며 그녀의 선조가 뿌리를 내린 땅이라 했다. 최명희 작가는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전주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고에서 교편을…2020-04-06 18:24

은 내가 홀로이던 아침 시간, 보이지 않아도 들리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고 걸리기도 하고 고이기도 하는 바람, 시냇물, 개미, 노루새끼…등이 숟갈로 떠먹는 ‘그 빛나는 말씀’이 되어 축복과 사랑에의 기도처럼 거룩한 본능처럼 “단단한 이빨로 꼭꼭 씹어 삼켜”피가 되고 살이 됐다는 메시지를 읽는다. 은 “웅크린 잠에서 깬 상고대 여인들이”, “한 번도 역적 자식 낳은 적 없는 골짝” 무돌뫼에서 배역의 땅이라는 오명을 털어내는 강건한 정신을 담았다. 인상…2020-04-06 18:24

머리 쪼개지고 얼굴 삐뚤어진 사바세계 가려다 뒤처진 상이 부처들 허구한 날 한 세월 종 종 거리며 성형은 언제 하나 천 년 만 년 눈 비 맞으며 눈총으로 지새는구나. 천불이 천 탑을 세우고자 풍운으로 이리 눕고 세월 따라 저리 뒤집고 극락 오르고자 천년 동안 묵언으로 정진하는 모로 누운 와불이…2020-03-23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