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미모 탐이 나서 보쌈할까 두려워서 꽃대를 가시로 둘러 견고한 성을 쌓고 내궁에 홀로 앉아서 전설을 읽고 있다. 김옥중 약력 ▶시조문학 천료(1980)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역임 ▶한국민족문학상, 세계문학상 시조대상, 국제교류작가문학상 시조대상 수상 ▶시조집 ‘금…2020-03-09 18:01

요즘은 하루 살기가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계절은 어우러지고 세상사 이 얘기 저 얘기는 쉼 없이 이어진다. ▶은 3연 1수의 단시조다. 탐이 날만큼의 미모 땜에 “꽃대를 가시로 둘러/견고한 성을 쌓고” “내궁에/홀로 앉아서” 전설을 읽고 있는 가시연꽃이 상상 중에 그려진다. 우포늪이 오늘처럼 유명한 것은 예쁘기만 한 가시연꽃 덕분인가. ▶은 평산댁과 이후에 지아비가 위치한다. 생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오기 끼워 넣어 불 지르고/하찮은 …2020-03-09 18:01

사막을 보고 있다 만지면 고운 모래가 묻어날 것 같은 고요가 고요를 말리는 건조증이 아직 진행 중이다 저 사막에도 용트림하듯 거센 강물줄기 흘렀었다 회초리를 들어 내 장딴지를 후려치던 그 강단진 패기는 어디쯤에서 말라버렸을까 한 장 한 장 생을 굽듯이 아스라하게 구워낸 내 등록금을 은행창구에 들이밀…2020-03-09 18:01

평생을 바가지 하나 허리에 꿰어차고 그림자처럼 붙어 지아비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었던 평산댁 사사건건 시비로 옭아매고 시시때때로 간섭으로 발목 잡아 지아비 기 팍 꺾어 쥐고 흔들던 평산댁 사소한 일에도 오기 끼워 넣어 불 지르고 하찮은 일에도 기름 뿌려 성냥 긋던 평산댁 집안의 기둥 밟고 올라서서…2020-03-09 18:01

신도 몇 명이 어울려 원주에서 민박집을 개업한 이 보살을 찾아갔다. 녹음이 우거진 쾌적한 곳이다. 이 보살은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으며 무공해 야채도 많이 먹고 며칠 푹 쉬어가라고 한다. 보살의 외숙 되시는 분이 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신다. 뱀이 나올 수 있다며 지팡이로 풀숲을 헤치는 그 분을 따라 골짜기로…2020-03-09 18:01

해질녘에 그 카페에 갔지. 그 사람을 찾았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행복한 남녀들의 모습만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묻혀 악기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지. 헤이즐넛 커피향이 불빛들을 포근히 감싸고 그 향기 속에 그 사람은 없었네. 해질녘에 그 카페에 가면 그 사람은 없고 쇼스타코비치만 있지만 그 음악이 뭘…2020-02-24 17:58

태양도 하루가 다하면 서산을 넘고 달도 차면 기우는 거역할 수 없는 섭리 꽃은 저 홀로 피고 저 홀로 지지만 제 할 일 다하고 나면 속절없이 한 곳을 향하여 조금씩 조금씩 시들어간다 우리네 인간도 그 섭리를 따라 하루하루 가야만 하는 길 가지 않을 수 없는 외길 따라 가야 하나니 오…2020-02-24 17:58

하늘이랑 호수랑 늘 가까이 지내는 이유가 있더라 호수가 심심하다 싶으면 하늘이 새들을 내려 보내고 하늘이 쓸쓸하다 싶을 땐 호수가 날려 보내고. 윤삼현 약력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조문학 천료, 아동문예문학상 평론 당선 ▶한국아동문학상, 송순문학…2020-02-24 17:58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려고 꺼내다보니 묵은 메모장 속에서 빛바랜 종이가 떨어진다. 펼쳐보니 독좌비쌍빈(獨坐悲雙鬢)이란 한시가 적혀있다. 출전에 대한 정보는 없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늙어감이 서럽다.’라는 해석만 있다. 이 메모장은 일본 오카야마(岡山)한국교육원에 근무했을 때에 쓰던 것이다. 어…2020-02-24 17:58

좀은 책속에서 살았어 낱말을 떼어 먹으며 긴 문장까지도 핥으며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햇볕 좋은 봄날 어른어른 책 밖으로 나왔어 -책벌레다! 좀을 발견한 아이가 소리쳤어 그 순간부터 좀은 아주 의젓한 공부하는 책벌레가 되었지. 이성자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너도 알 거…2020-02-11 17:42

2월은 봄꿈에 겨운 풋내기 처녀들이 조급히 강을 건너는 달이다 기대에 부푼 새해 희망이 설 까치처럼 울어 들뜬 마음 다잡아먹지 않고서는 풀리는 강가에 물 오른 버들강아지 빛 좋은 얼굴 바라보다가 쥐불에 태워버린 연처럼 허망하게 놓치고 마는 달이다 2월은 성급히 봄맞이를 나서는 바람에 하루…2020-02-11 17:42

나무 중에 나무는 참나무 사랑 중에 사랑은 참사랑 사람 중에 사람은 참사람 좋은 것은 다 초록 새싹으로 돋아내고 나쁜 것은 다 붉은 낙엽으로 떨쳐버린 참나무처럽 죽고 또 죽어 빛나는 참사람이 되고 싶다 여름엔 그늘로 쉼터를 만들고 가을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 어머니는 아궁이에 참나무 장작…2020-02-11 17:42

그랑께 가보장께라우. 첨에 광주 말바우장에서 묵은 맘 그대로 전통 재래시장을 돌아댕김시롱 방언을 찾아보장께. 아따메! 강진군 병영 5일장은 발써 파장이네 잉! 인자 재래시장에서 방언을 만나기는 틀레뿔었는갑소야. 이새저새 해도 먹새가 질인디 참. 식당에나 들어가 정심을 묵음시롱 아짐씨헌테 물어봐야 쓰것어라우.…2020-02-11 17:42

새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한해가 시작되면 모래주머니에 구멍을 낸 것처럼 세월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문학은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처럼 계절감 또한 으뜸 소재다. 김석문 시인의 ‘2월’은 “풋내기 처녀들이/조급히 강을 건너는 달”이라는 표현에 이 시의 창작의도가 숨 쉬고 있다. 얼음 풀린 강가에 나가 물오른 버들가지로 버들피리 만들던 일은 성급한 봄맞이가 아닐 수 없었다. 박래흥 시인의 ‘참나무’는 ‘참나무’, ‘참사람…2020-02-11 17:42

산골짜기 골짜기마다 하얗게 내린 숲 속 두 팔 벌린 나무들 가지마다 가득히 눈꽃으로 뒤덮인 산길과 청솔가지 흰옷이 눈부시다 가끔 눈부신 날엔 도심을 떠나 외딴 산 언덕길 오른다 벅찬 가슴 사각거리는 보드라운 소리 작은 솜털 끝까지 바람 같은 통증 전해져 오는데 허기진 목숨 이겨 내려는 노력이 아름답게…2020-01-27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