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아침이 밝아 오면 아버지는 나무지게에 ‘옹고발’(‘발채’의 방언)을 끼워 논과 밭으로 일 나가셨다. 옹고발 옆에는 조선낫이 끼워져 있고 괭이와 삽은 발채에 기다랗게 누워 아버지 발걸음에 리듬을 타며 따라다녔다. 하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들에서 돌아오실 때면 옹고발에는 소꼴이 넘실거리고 머리에…2020-08-03 19:30

▲‘겸손에 대한 수업’은 자기반성의 의미가 강한 작품이다. 코로나19의 환란은 우리 인간에게 큰 가르침을 준 거대질환이고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을 바꿔버린 인류 최대의 시련으로 기록될 것 같다.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상대와 거리 두기, 손 씻기…. 이것만도 지금까지와는 상상 이상의 전환이다. 하잘 것 없는 바이러스로 인간이 이처럼 무력하다니 그 왜소함이 뼈저린 시점이다. ▲무등산은 광주사람에겐 자부심이 큰 어머니 산이다. 노래하는 시인에 따라 생각도…2020-08-03 19:30

솔바람 소올솔 불어오는 숲 그늘 아래 어리석은 중생 업을 다스리듯 햇살 닿는 곳마다 물러앉은 꽃무릇 노승의 설법에 잉태한 생명인가? 얻으니 기쁘고 만나니 반갑다 산기슭 정기 따라 지순한 숨결 뉘 가슴의 얼이실까 고요에 잠긴 산사 여기에 와 이르니 범종소리 목이 메는 애잔한 산울림 조각난 꿈을 모아…2020-07-20 18:01

몹시 야윈 어린 토끼 한 마리 눈 덮인 밭고랑 사이를 헤집으며 주린 배 채우려다 몰이꾼이 펴 놓은 덫에 목이 채여 한동안 목숨 걸고 발버둥하다 하얀 눈 위에 쏟아낸 붉은 피 죽음으로도 끝내 이루어 내지 못한 꿈 핏빛으로 쏟아내는 애절한 짧은 생이 너무 가여워. 박길무 약력 ▶월간문학 신인…2020-07-20 18:01

탐스럽게 핀 동백나무 아래 음주 뺑소니차 굉음을 내며 지나간 자리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통째로 스러진 꽃송이 꽃송이들 핏빛으로 흥건하다 뺑소니 닮은 봄 신서영 약력 ▶‘아시아서석문학’ 시 수필 등단 ▶ 아시아서석문학 편집국장 ▶ 시집 ‘네모난 바다’2020-07-20 18:01

언제부턴가 신발을 잃거나 낯선 곳에 벗어놓고 오는 꿈을 자주 꾸었다. 딱히 욕심나는 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끼는 신발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잊을 만하면 그 꿈을 꾸게 될까? 프로이트는 의미 없는 꿈은 없다고 하였다. 꿈은 무의식을 대리하는 상징성이며, 그 꿈의 원천은 ‘최근에 벌어진 사소한 일…2020-07-20 18:01

이나저나 작가는 작품을 쓰지만 지역의 뒤늦은 코로나19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가 걱정이다. ▶‘토끼의 일생’에서 우리는 긍휼한 마음으로 “몹시 야윈/어린 토끼 한 마리”의 ‘꿈’을 읽는다. 작품 속의 토끼는 “눈 덮인 밭고랑 사이를 헤집으며/주린 배 채우려다//몰이꾼이 펴 놓은/덫에 목이 채여” 죽고 만다. 굶주린 채로 눈 내린 산천을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것은 몰이꾼의 덫이라는 사실에서 시인의 시선이 무심할리 없었을 것이다. ▶‘봄의 통젼은 시적…2020-07-20 18:01

한 평쯤의 남새밭이 있다면 산초나물 족두리풀 기린초를 심을래 좋아하는 저들끼리 더불어 살아가게 붉은점모시나무 친구는 기린초 애호랑나비는 족두리풀 암흰노랑나비 친구는 냉이꽃 큰수리팔랑나비 친구는 음나무라지 향기 없이 예쁜 돌연변이 꽃 말고 고민 털어 서로 끄덕이며 피는 꽃이 되고 싶어 그 중 냉…2020-07-06 19:10

장마로 인한 불쾌지수를 낮추자면 독서 삼매경이 요긴한 계절이다. ▶시 ‘거짓말 저격수’는 거짓말로 성장했고, 감옥 가고, 날밤 새우던 화자 땜에 ‘거짓말’도 감옥 간다는 은유적 표현이 인상적이다. 태생부터 거짓말이던 ‘그’를 감옥에 가두니까 거짓말도 감옥살이에 든 셈인데 이로 인한 신화의 저수지 주변 거짓말이 또 다른 의미를 지어내고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거짓말은 말려버릴 수 없다는 울림이 읽힌다. ---------------------- ▶시 ‘만일’은…2020-07-06 19:10

하늘과 바다가 포옹하는 흔적이구나 수억 년을 짓밟아도 끊이지 않는 노을의 줄넘기 아기구름이 고무줄인양 당겨보지만 자는 듯 누워있는 과묵한, 너의 끈질긴 목숨은 어디가 시작과 끝인지 파도의 얼룩들로 얽혀 있는 너에게 풀어진 바람의 상처가 걸터앉아 울고 어둠을 여는 예배당 종소리가 부딪혀 울고 간혹 …2020-07-06 19:10

그는 거짓말의 저수지에서 태어나 거짓말로 성장했고 거짓말로 감옥에 갔다 감옥은 거짓말을 가두는 곳 붉은 벽에 말을 걸자 벽은 등을 뒤로 돌려 메아리처럼 그의 말을 되돌려 줄 뿐 그들의 저수지는 거짓말로 말라가고 있다 不老不死의 힘을 지닌 거짓말의 저격수 크로노스*와 함께 *그리스 …2020-07-06 19:10

어느 목사님은 설교 중에 중산층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신사의 나라 영국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중산층을 비교했다. 그 내용을 재구성하여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중산층을 다음 다섯 가지 기준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부채 없이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 기준은…2020-07-06 19:10

여름이 큰소리로 노래 불러 찾아오면 물보라 뿜어 올려 춤을 추는 호수 가에 하얀 꽃 곱게 피어난 불두화(佛頭花)를 보았네 초여름 마음 밭에 뿌린 씨앗 싹을 틔워 행복한 웃음으로 고운사랑 나눌 때면 어여쁜 꽃망울들은 노래하며 춤추네 마음씨 고운 얼굴 꽃 보라로 휘날리니 화려…2020-06-22 19:05

토끼같은 새끼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는 일한 치 앞 보이지 않게 눈오는 밤광주에서 진주를 지나 부산까지발가락 오므리고 운전해 토끼를 보러 가는 일봄날압록에서 하동가는 섬진강 벚꽃을 보러 가는 일제주도 사라오름에서 소나기를 만나는 일때로는 꼿발스고 수수모가지에 양파망을 씌우는 일‘스페인은 자유다’를 읽으며…2020-06-22 19:05

출렁이는 쪽물 바다, 모차르트 음률이다. 하얀 버캐 풀어놓은 풋풋한 물너울에 건반을 두드리듯이 숭어뜀 뛰는 어족들. 파도에 대끼다가 등 비늘을 번들거리다 지느러미 나풀거림도, 신명 겨운 뒤채임도 때 이른 바람 몰고 와 수평선에 활을 긋는다. 익명의 섬이 솟아 마주 …2020-06-22 19:05